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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Nov 08. 2021

비움의 미학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늘 읽던 책도 잘 읽힌다. 그럴 때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펴본다. 어느 날 다이어리 속 메모들보다 책상 위 한가득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리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인 책들이 마음에 거슬렸다. 협찬받은 책들, 읽어야 할 책들, 읽고 싶은 책들, 노트북, 기타 문구류로 책상은 복잡한 내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오랜만에 청소나 좀 해볼까?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거야.”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점점 책장 밖까지 쌓여가는 책들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워낙 책 욕심이 많은지라, 대학생 때부터 돈이 생기면 옷이 아닌 책을 사 모았다. 당장 읽지 않아도 사야 할 충동에 나는 매번 졌다. 그래서 이사 갈 때마다 가장 힘들고 무거운 것이 책이었다. 젊을 때부터 사 모은 책들은 큰 짐이 되었다. 이사 갈 때마다 옷이나 다른 물품들은 한 번씩 정리하거나 버리기도 했지만, 책은 잘 버리지 못한 물건 중 하나였다. 아니 책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내 머리 속에는 없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첫 번째로 고민하는 구도가 책장과 책상이다. 어느 방을 서재로 할지, 책장과 책상은 어느 벽면에 놓으면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이 나올지 말이다. 


 그러다가 올해 초 퇴직 후 처음으로 책을 버려보았다. 젊을 때부터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형성해간 책들이다. 그것을 버리는 순간 내 존재의 일부분 그리고 나의 일들의 한 부분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퇴직 후 나는 이제 그 일들과 의식적으로라도 멀어져야 한다. 이제 또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야 한다. 


 집을 조금 미니멀하게 만들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제 조금은 버려도 될 거 같았다. 고민고민해서 잘 읽지 않거나, 다시 안 봐도 되는 책들만 골랐다. 네 다섯 박스 정도 나왔다. 후배들에게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중고시장에 팔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책들은 오래되기도 했지만, 중고시장에서는 그리 값어치가 없는 책들임을 처음 알았다. 조금 후련해지기는 했지만 버려도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처음으로 책을 버린 경험은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책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복잡한 것도 있었지만, 뭔가 가볍게 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애꿎은 책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활용을 모아 놓은 수거함에서 상자를 몇 개 주워왔다. “나중에 필요하면 도서관에 가서 보면 돼! 이제 책은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은 공유의 시대야!” 한번 버려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주저하지 않고 책들을 빠르게 담기 시작했다. 막상 담으니 또 몇 박스가 나왔다. 한 박스 한 박스 채워갈 때마다 속도가 빨라졌다. 중고시장에 팔 것, 버릴 것, 도서관에 기증할 것으로 나눠서 담기 시작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동안 버리지 못했을까? 뭐가 아쉬워서.” 몇 박스 내다 버리니 또 버리고 싶었다. 올해 초, 버려도 비어지지 않는 책장이 조금씩 비어있는 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방 또 새 책으로 채워지겠지만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기분이 좋다. 복잡한 마음도 단순해졌다. 





 책도 미니멀이 필요하다.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불필요하게 많이 짊어지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 소유한다고 해서 책 속의 지식이 내 것이 될 수도 없다. 지식과 정보의 낱개는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가치는 내 존재 어딘가에 박혀 내 삶을 인도하고 있을 것이다. 책도 빨리빨리 유통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주인에게 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책 속의 지식은 죽어있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로 가서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채우고, 제 할 일을 다하며 만족해할 것이다. 


 사람마다 비우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비우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옷’이다. 평생 옷을 만들며 살아온 엄마는 여든이 넘어도 만들고 또 멋지게 차려입는다. 구제 옷도 금방 새 옷처럼 살리는 재주가 엄마에게는 있다. 불행하게도 딸들보다 체구가 크신 엄마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이 옷들을 물려주지도 못할 거라면서 아쉬워하신다. 그렇게 친정은 곳곳에 비우지 못한 옷과 실, 가방, 옷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수십 년 이사도 다니지 않았기에 그 채움은 더하다.


 돌아보니 나에게는 책’이었다. 비우지 못한 그 이유를 파 들어가고 보면 다 집착과 욕심에 근거해 있다. 분리하는 즉시 내 존재감,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책을 소유하면 그 속의 지식이 내 것이라도 되는 양하는 교만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역할도 바뀌고 시대도 변한다. 지금의 시기는 더욱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버려야 새것으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놓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욕심이고 집착이지 않을까. 그것은 쌓이고 쌓여 내 본질을 가리고 오히려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는데, 예전 짐들이 나를 여전히 부여잡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예전 사람들의 정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정리를 대신해 주는 TV프로그램도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닐까. 내가 비우지 못하니  누군가라도 와서 버려주는 손길 말이다. 그렇게라도 버릴 수 있다면, 그리고 가벼워질 수 있다면 된 것이다. 


 올해의 끝이 보인다.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버려야 한다. 그러니 이제 무언인가 비우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원주신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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