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지역에는 다양한 소모임들이 있다. 독서, 영화, 걷기, 그림, 운동 등 저마다의 취향과 선호를 따라서 모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재택근무화되어가던 시기, 조금 여유로워진 틈을 타서 나는 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예 창작 모임을 두드렸다. 40여 년간 수필을 써 오신 문해영 선생님이 인도하시는 수필반이었다. 수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나는 한 학기 동안 성실히 모임에 참여했었다.
모임을 시작한 지 중간을 넘어서니 선생님은 글을 한 편씩 써 올 것을 독려했다. 그리고 회원들이 써 온 글에 대해서 일일이 첨삭을 해 주시며 전반부에 배운 글쓰기 이론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그 실제를 알려 주셨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들었지만 수업이 끝나가도록 서로의 얼굴도 잘 모른다. 밥 한 번 먹을 기회가 없었기에 아직 회원들과 서먹하다.
그러나 수필은 자신의 일상을 열어 보여야 한다. 아직 친밀도가 낮은 학우들 앞에서 나의 글을 통해 내 삶의 일부분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고 내키지 않아서 끝까지 글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도서관에서 우리글들을 모아 책 출간을 지원해 준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모두가 어떤 결과물이 주어진다는 것에 동기부여가 되어서인지 회원들뿐 아니라 나 또한 글 세 편을 한꺼번에 내게 되었다. 이렇게 공저를 출간함과 동시에 ‘원주 수필 문학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나의 첫 책을 내게 되었다. 책을 출간하고 나니 오히려 시간이 조금 여유로웠다. 인스타를 살펴보다가 ‘원주 독립출판 교류회’모임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 맘은 있었지만 일이 많아서 미처 참여하지 못했던 모임이었다. 이미 글을 쓰는 수필 모임을 함께 하고 있었지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 보니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도 관심이 생겨서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독립출판물을 내고 있는 원주에 있는 분들과도 교류를 해 보고 싶었다.
수필 모임은 방학 제외하고 매주 모이며, 나보다 조금 연배가 있으신 오, 육십 대 여성분들이 많으시다. 그러나 독립 교류회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나기 때문에 모임도 느슨하고 나보다는 젊은 분들이 더 많았다. 속한 연령대의 비중이 다르다 보니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우선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다르다. 수필 문학회의 회원 한두 분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오, 육십 대 분들의 부모이시니 여든이 훨씬 넘으셨고, 그러하기에 자식의 돌봄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독립 교류회 회원들은 젊은 엄마, 비혼, 기자, 프리랜서, 독립 책방 지기, 전업주부 등 처한 환경도 고민도 각기 다양했다. 쓰는 언어도 매우 젊었다. 솔직히 첫 모임 때는 줄임말을 많이 써서 못 알아듣는 말도 종동 있었다. 이들은 한 학기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 독립 출판물을 내고 있다. 책을 만들고 나서 출간기념회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소하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독립출판물에는 비록 ISBN이 붙지 않지만 출판사 눈치 보지 않을 수 있고, 투고라는 고된 인내의 시간도 필요가 없다. 오롯이 자신의 취향만을 담긴 글을 마음껏 써서 각자의 분량만큼 원고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거래되지 않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작지만 느슨한 모임이 왠지 끌린다. 더욱이 같은 지역의 살면서도 다른 시간대와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랜 시간 읽고 또 읽기만 하다가 낸 첫 책은 내가 가까이했던 나의 ‘독서 여정’을 담은 책이었다.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책 속 문장을 의지하며 지금까지 왔다. ‘독서’는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늘 눈치를 살피며 열등감에서 허우적대었던 아이를 나만의 생각과 자유를 챙길 줄 아는 주체적인 어른으로, 여전히 변화의 파도 속에 흔들리고 흔들리지만 언제든 피신할 수 있는 나만의 믿는 구석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독서의 끝자락에서 이제 ‘글쓰기’라는 선물을 만났다. 나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강의를 위해서 완성되지 않는 글들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책 숲을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글이라는 것을 끄적이고 있었다. 여전히 글쓰기는 두렵고 어렵다. 잘 쓰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이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듯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도 난 ‘왜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가?’를 스스로에게 묻지만, 이 이유를 책을 읽다가 이 한 문장에서 또 발견한다.
“삶에서 글이 태어나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 『글의 품격』 이기주
삶에서 글이 태어난다. 글을 다듬다 보면 삶도 다듬어진다. 글은 남는다. 기록한 대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려니 삶을 함부로 살 수 없다. 삶과 글이 다른 사람도 있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그 괴리를 좁히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 빈 여백에 감정이든 생각이든 다 쏟아내다 보면 글은 나와 내 삶을 어루만지며 치유하고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일상의 작고 큰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내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곳곳에 읽고 쓰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읽고 쓰는 것은 삶을 다듬는 것이며, 또 우리의 모난 생각과 상처받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기에.
공저 독립출간물 <원주롭다>에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