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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Jan 25. 2024

회장님이 돌아가셨다

초보 산행인의 등산 일기 2




          

지난 월출산 이야기를 계속해 보려고 한다. 산행을 위해 출발 집합지에 모이기 전 집에 놔두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간 물건은 등산 ‘스틱’이었다. 겨울 산행에 스틱을 꼭 준비하라는 산악회 회장님의 말씀에 구매해 놓았지만, 정작 지난 백두대간 첫 산행 때 스틱을 차에 놔두었다. 내 두 발로 당당히 산행을 하고 싶었고, 지팡이 같은 스틱에 의지한다는 것이 뭔가 나약해 보였다. 그러나 백두대간 완주 지점을 앞두고 나의 걸음을 기다려주시며 함께 산행해 주신 한 남성이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 번 경험해 보라며, 자신의 스틱을 나에게 던져주다시피 하셨다. 19km 완주 3~4km를 앞두고 내려오는 길에 내 다리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하나의 스틱은 구원자가 되어 주었다. 잠깐이지만 ‘이래서 스틱이 필요한 거였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혜로운 남성분이셨다.      


그래서 다음 산행에는 꼭 스틱을 써야지 하며 다짐했는데, 그만 그 중요한 스틱을 놔두고 출발 집합지로 간 거였다. 출발 시간까지 10분의 시간이 남았지만 나는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스틱이 없으면 이번 산행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차를 돌려 스틱을 가져왔고 아슬아슬하게 출발시간까지 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뒤꿈치를 밀어준 힘     


정말 오르막 길에서 스틱은 나의 구원자가 되어 주었다. 양쪽 두 손에 붙들린 스틱이 걸림돌이 아니라 나에게 또 다른 자유를 안겨다 주었다. 흙바닥보다 바위가 더 많이 나오는 바위산이었기에 난감했지만, 튼튼한 양손의 스틱은 내 빈약한 다리를 보완해 주기에 충분했다. 왜 스틱을 사용해야 하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스틱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등산을 조금은 수월하게 해 주고 내 몸을 보호해 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그런데 거의 90도를 가르는 바위가 등장했다. 이런 길은 스틱을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가끔 밧줄이 달려 있어 그것을 타고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비까지 오기에 살짝 미끄럽기도 했다. 순간 당황함을 표시하며 “어떡하지.”라는 말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앞뒤에 오시는 분들이 내 말을 들으셨는지, 앞에 있는 여성은 내 손을 잡아주셨고, 뒤의 남성은 내 신발 뒤꿈치를 잡아주시고 밀어주셔서 쉽게 그 바위를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도움을 얻고자 산악회에 동참했지만 중간중간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하며 독립과 자유를 사랑하는 ‘나’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혼자되는 일은 없음을 이곳에서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1인 기업, 나 홀로 비즈니스가 성행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테이커는 테이크로서만 살 수 있지만, 기버자가 늘 기버자로만 살 수는 없다. 어쩌면 늘 주는데 익숙한 사람은 테이커를 어려워한다. 예전의 내가 그랬다. 그러나 때때로 테이커도 되어야지 테이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기버자일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정직하게 파악하고, 기버자로서의 영적 우월에 빠지지 않고, 겸손을 배우게 된다. 


초보 산행인의 눈에 작은 스틱이 거추장스럽게 보였던 교만함은 이제 산산이 깨어졌다. 내 손에 꽉 잡은 작은 스틱은 산행 내내 귀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고, 내 신발 뒤꿈치를 힘껏 밀어주었던 그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안겨다 주었다. 기버자로서의 열심히 살 것이고, 혼자만의 고독과 독립, 자유도 사랑할 것이지만, 테이크로서의 마음 또한 세상에 열어 두며 도움받는 것과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고한 독립인으로서의 삶도 좋지만, 작든 크든 기버자들이 베푸는 작은 도움 위에서 우리 모두는 성장해 감을 잊지 말아야겠다.     





스틱도 부러질 수 있다     


힘들지만 스틱을 의지하여 힘껏 산행했다. 지난번보다 오르막 길이 수월했다. 드디어 월출산 정상에 올랐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에도 가끔 오르막이 등장했고, 약하게 내리던 비는 조금 강해지고 정상 쪽이라 그런지 바람에 세차게 몰아붙였다. 이러다가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려움이 살짝 밀려왔다. 한쪽에는 스틱을 의지하고 옆에 난간을 단단히 붙잡으며 비바람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러다가 내리막길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스틱이 그 충격을 보완해 주어서인지 엉덩이에 가해지는 충격은 미미했다. 그런데 그 흔적은 스틱에 남겨졌다. 왼쪽 스틱이 휘어져 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산 싼 스틱일지라도 처음 사용하는 스틱인데 아까웠다. 스틱도 초보 산행인의 쉽지 않은 산행 코스에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출산에서 첫 스틱이라 ‘월출’이라고 이름도 붙여 주었는데, 하나의 스틱이 그렇게 빠르게 운명을 다했다.      

근데 이상하게 그 이후에도 내리막길에서 두 번이나 더 미끄러졌다. 충격은 크게 없었지만, 그러면서 생각했다. 비가 와서 미끄러운 이유도 있었을 테지만, 내 다리에 힘이 약한 이유도 분명히 있었을 테다. 등산화를 신었기에 다리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면 단단히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단단하지 못하면 도움받는 스틱도 부러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도움을 받더라도 받는 사람의 기본 체력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느 공동체에나 소속되어 있다. 가족이기도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기버자로 살기도 하고 테이커로 살기도 한다. 영원히 기버자로만, 테이커로만 살 수는 없다. 그런데 기버자이든 테이커든 중요한 것은 각자의 건강함이다.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함께하는 공동체도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의지했던 스틱이 부러지는 것처럼 기버자이든 테이커이든 부러질 수 있다. 영원히 테이커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 체력을 단단히 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만 있지 않은 것이다. 함께하는 이들이 건강함을 유지하고 성장해 가기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해야 하고 꾸준히 성장해야 가야 한다. 내 기초 체력이 부족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면 나와 동행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스틱에게 미안했다. 내 기초 체력이 부족하여 내가 너무 많이 의지한 것 같아서, 너무 빨리 소명을 다하고 보내드리는 것 같아서.      




잊어서는 안 될 진실 하나     


그렇게 하나의 스틱을 보내어 주었다. 산 정산에 다다를 즈음, 비바람이 조금 거세게 몰아치는 구간이 있었다. 그즈음 바위 동굴 같은 곳이 보였는데 나는 앞뒤 2~3명과 함께 계속 걸었는데 한 분이 여기서 준비해 온 간식을 먹고 좀 쉬어서 가자고 했다. 아늑한 공간이었다. 비바람을 잠시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고, 온 산을 누비며 다녔을 고대인들도 이런 곳에서 비바람을 피했겠구나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다른 분들은 전문 산악인답게 가방에서 보온 가방을 꺼내고,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간식들을 펼쳐 보였다. 가방이 큰 이유가 있었다. 반면 나는 달랑 초코바 두 개만을 준비했다. 험한 산행길에 먹는 것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이 정도면 나에게 충분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 수량까지 계산한 듯이 넉넉하게 간식을 준비해 오셨다. 빵, 떡, 과일, 삶은 달걀, 초콜릿 등등. 하나씩 먹어보라며 나에게 건네주셨다. 다 먹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채비를 할 즈음, 그다음 일행이 동굴에 도착했다.      


산악회 회장님 일행이었다. 회장님은 내가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아시고, 내가 잘 참여하고 있는지 가끔 확인해 주신다. 이번에도 내 얼굴을 확인하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식사같이 했냐고 따뜻하게 물어봐 주셨다. 눈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빠르게 비바람을 뚫고 하산해 빨간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몇 분이 지금 큰일이 났는데 회장님이 산에서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동굴에서 만나 인사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굴에서 음식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심장 마비가 와서 쓰러지셨고 119 구조대를 부른 상황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거의 버스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다음 예정지인 나주 곰탕집에 가지 못했다.      


아직 회장님이 하산하지 못했다. 119 구조대에 실려 내려오는 중인데, 몸무게도 상당히 나가는 편이셨고, 비도 오는 중이라 하산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렇게 하산 길목에서 2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야 119 구조대와 함께 회장님이 응급 차량에 실리셨다. 예정된 식사는 취소하고 병원으로 버스도 이동했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리를 하고 회장님은 병원 차량으로 원주로 이동했다.      


버스 일행은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식사했다. 나는 우동을 먹으며 밴드를 확인했다. “000 회장님의 부고 소식을 알립니다.”라는 글 아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0여 개의 댓글이 이미 달려 있었다. 산악회가 운영된 지 6년이 넘었고, 원주에서는 가장 큰 산악회인 듯했다. 회장님 부부는 오랜 기간 산악회에 봉사해 오셨다고 한다. 밴드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시로 올라오는 글, 빠른 채팅 답장 등 젊은 분이 리더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만나고 보니 60이 넘은 분이셨다. 그래도 요즘에는 60대도 젊은 나이이다. 이번 산행에 동참한 분이나 아닌 분들이나 모두 황망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봉사해 오셨던 회장님의 덕을 입은 사람들이리라.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모두들 당황했다. 나 또한 두 번째 산행이며, 두 번째 만남일 뿐이지만, 동굴에서 마지막 눈인사를 하고 내려왔는데 어찌 이렇게 허무한 만남과 헤어짐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등산을 좋아해서 산악회를 만드시고 봉사도 해 오셨을 것이다. 죽을 만한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병이 있으셨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매주 산행할 정도이면 그리 위험한 몸 상태는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데.      

얼마 전에는 책쓰기를 지도한 한 영어 학원 원장님이 운명을 달리하셨다. 아직은 젊고 싱글이며 에너지도 많은 분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함께 공동 저자로 참여한 다른 작가님이 어느 날 전화를 주셨다. 부고 소식이었다. 한두 달 전에 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잠시 입원했다가 퇴원 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낮잠을 1시간 자는 중에 심장 마비가 왔던 것이다. 죽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지난해에는 잠시 참여한 한 공부 모임에서 내 앞에 앉으신 분이 계셨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뒷모습만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저 강의를 시작할 때 강사분이 제일 일찍 오셔서 앞자리에 앉은 분이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톡방에서 갑작스러운 그분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알고 보니 몸이 평상시 좋은 편은 아니셨다. 그런데도 마지막 동아줄을 잡듯이 그 몸을 이끌고 배움의 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 강의 수강비가 싼 편도 아니었다. 배움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그분은 왜 일찍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우리는 내 삶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한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하고 좋은 것을 먹고, 일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진실 중 하나는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AI가 발달해 죽음을 연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죽음은 아무 이유 없이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자에게도, 매주 산행할 정도로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에게도,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고자 아픈 와중에도 배움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자에게도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유튜브 찬양을 틀어놓고 기도한다. 그때는 후원 광고들이 뜬다. 보통은 지나치는데 오늘은 보여지는 광고 영상을 가만히 틀어놓고 있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선교하시는 중년의 여성분이 등장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신다. 작은 상처하나가 폐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에이즈에 걸려 죽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죽는 게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라고 말하신다. '무슨 말이지? 아이들이 죽는 게 위로가 된다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거기 가면 그래도 아프지 않을 거 아니예요. 거기서는 잘 먹고 따뜻한 돌봄도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이다. 그렇다. 세상에 삶보다 죽음이 더 나은 인생도 있을 테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 일상인 그 선교사님의 삶은 어떠실까? 그 분은 왜 그 곳을 지키고 계실까?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죽음에 대해 잠시 묵상해 본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아침마다 죽음을 묵상하는 것이 유익하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이다.” 등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귀들이 생각난다.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몰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유한하며, 불확실성을 제하고 안전해지려는 수많은 시도 속에서도 한계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매일매일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하루를 가장 잘 살기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 매일 운동하고 배우고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다 좋다. 그럼에도 그 정신없는 바쁜 나날 중에서도 이 모든 것을 언젠가는 갑자기 내려놓을 수 있음을 수용하고,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갖출 때 우리는 조금 더 속도 조절을 하며, 주변도 돌아보며, 여유 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지금 갑자기 죽어도 괜찮은 하루를 살고 싶다. 




2024.1.19. 월출산 하산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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