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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민지 May 09. 2024

《필사의 힘》

수준 높은 명작을 옮겨 쓰며, 나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어

《필사의 힘》




새하얀 종이와 펜보다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이들을 보게 된다. 잠시 시간이 나면 자연스레 작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에 그렇다. 노트북·스마트폰 등이 손의 고유영역이었던 필기나 의사 표현을 대체하고 있어서다.


우연히 장기간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니 같은 문장을 수차례 읽게 된다. 눈은 책 속의 글을 따라 읽고 있었지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평소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옮겨 써보기로 했다. 사실 필사를 처음 하는 건 아니었다. 코로나 19로 불요불급(不要不急)할 때만 외출할 수 있었기에 집에서 시간 보내기 좋은 안성맞춤이었다. 꾹꾹 눌러써도 번지지 않을 만한 문구류와 책을 준비하는 순간마저 더없이 소중했다.

     

모두 잠든 새벽, 나만의 시간은 달콤했다. 적막한 때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드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가끔 잠이 덜 깬 상태로 쓰다 보면 글이 괴발개발일 때도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마음속 고민이 저만치 멀어졌다. 여백을 채우며 혹여 잘못 옮겨 쓸까 온 정신을 손끝에 집중하니 헝클어진 실타래 같던 잡념은 어느새 말끔히 비워지기도 했다.

      

독서를 급히 하다 보니 어느새 헤어진 연인처럼 필사를 잊은 채 살게 되었다. 이후 좋은 문장을 읽을 때면 휴대전화로 순간을 남겼다. 삶에서 하나만 빠졌을 뿐인데 좋았던 책에 대한 기억마저 쉽사리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필사(筆寫)는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끼며, 손으로 천천히 옮겨 쓰는 행위를 일컫는다. 소근육 발달과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문장력 향상에도 으뜸이다. 작가의 생각과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런 ‘필사족’들을 위해 미르북컴퍼니에서 나온 《필사의 힘》 시리즈를 소개할까 한다. 그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따라 쓰기’는 디지털 시대에 나만의 손글씨로 시인의 감성을 되찾게 해 주었다. 책의 왼쪽에 문학 작품의 텍스트가 있고, 오른쪽에는 왼쪽 문장을 보며 옮겨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여러 번 곱씹으며 읽고, 시의 맥락이나 역사의 격동기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떤 마음으로 글귀를 써 내려갔을지 공감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권한다.

     

이 책은 윤동주 시인을 이렇게 소개한다. “어두운 시절 아래서 민족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와 산문을 썼습니다. 하지만 생전에는 작품집을 낼 수조차 없었고,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윤동주입니다.”


그의 대표 시 <서시(序詩)>로 책은 시작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序詩)> 전문

     

‘하늘’과 ‘별’이라는 시어를 통해 순수한 마음을, ‘바람’이라는 시어에 유혹이나 고난, 시련을 표현해 냈다. 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 1~4행은 ‘~했다.’로 과거형으로 마무리되며, 5~8행은 ‘~겠다’로 미래형으로 마무리되고, 2연은 ‘오늘’을 통해 현재를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시구(詩句)가 큰 울림을 주는 듯하다.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윤 시인의 시대적 고뇌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시국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하며 통찰하고 고민하게 되기에 그렇다.

      

직접 읽고 옮겨 써보니 읽기만 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꾹꾹 눌러쓴 내용을 내려다보니 공감대 형성과 마음이 풍부해지는 데 도움받을 만한 것이 바로 시가 아닐는지. 시인이 사용한 시어를 통해 은유나 상징·함축된 의미까지 유추해 보게 된다.

     

최근 새롭게 좋아진 시 <새로운 길>도 소개할까 한다.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새로운 길> 전문

     

이 시는 1연과 5연이 다시 반복되는 문학적 구성법인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이루어졌다.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기기도 했다. ‘내’와 ‘고개’는 시련과 고난을 뜻하고, ‘숲’과 ‘마을’은 평화를 뜻하기도 한다. 2연의 ‘어제도’, ‘오늘도’는 쉬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따사로운 봄빛 아래 길가의 민들레와 까치와 바람이 밝고 환하게 느껴졌다. 민들레의 꽃말은 ‘순수한 마음, 새로운 시작, 인내와 신념’이라고 한다. 씨앗이 날아가 새 생명을 만들기에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기도 하며, 뿌리가 깊이 박힌 모습에서 인내와 신념을 나타내기도 한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숨고르며 필사하고 나니, 글을 밀도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읽기만 했을 때와는 달리 놓쳤던 문장들을 숨바꼭질하듯 찾아 읽는 새로운 묘미까지 더해졌다. 지친 마음을 만져주고 문장력까지 길러 주는 《필사의 힘》 (부제 :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을 따라 쓰며 나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다니 감수성을 담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 나가 보길 권한다.


북적북적 북클럽 ep.1

ⓒ북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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