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확진자의 생생한 후기와 일상
며칠 전 나는 복부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가서 염증 치료를 했었다. 정말 아팠고 5일 정도 지나가 통증은 해소되었다. 이제 열심히 일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몸살이 난 것처럼 두통과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염증 항생제를 너무 많이 먹어서 후유증이 생겼나 싶었다.
하지만 점점 증상이 심상치 않게 발전됐다. 목이 간지럽고 콧물이 나오고 기침과 재채기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얼른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병원 복도에 격리되었다. 나 말고도 2명이나 더 있었고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내 앞에 두 분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분들이 나와 증상이 비슷했다.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코로나 검사는 코를 후벼야 되는데 정말 고통스럽다.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틀 후에 양성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를 가지고 일단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기운이 쭉 빠지고 열이 나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보건소에 가야 했지만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오한이 났다. 나는 일어날 수 없어 내 방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 부모님께 설명하고 그날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잤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왜냐면 이런 형태의 감기는 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긴 한데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특히 목이 간지러운 게 감기와 달랐다. 이런 증상은 처음이었고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어떤 육감이 작동하기도 했다.
나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괜찮아졌다가 다시 아프기를 반복했다. 혹시 몰라 자가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꾸역꾸역 검사를 실시했다. 면봉으로 코 안쪽을 깊숙이 쑤셔 박았다. 너무 아팠다. 그래도 검사를 해야만 했다.
보건소 PCR 검사는 자가 키트로 양성이 나와야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 갔다 온 날 한 번 하고 그다음 날 다시 한번 자가 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명확하게 두줄이 나왔고 나는 아연실색하였다.
제발 아니길 바랬지만 확실하게 나는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그 쯤에 나는 미각도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후각도 상실되고 있었다. 주말이었지만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보건소를 찾았다.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구청 직원분이 오셔서 뭐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
" 여기 자가 키트입니다. 확진 판정받았어요."
나는 병원에서 받은 의사 소견서와 자가 키트를 내밀었다. 직원분은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내 팔뚝에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 시간 없어요! 저기 검사 입구 보이시죠? 여기 큐알코드 찍고 전자 문진표 작성한 후에 검사 받으세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나는 후다닥 전자 문진표를 작성한 뒤 PCR 검사 입구로 뛰어갔다. 내가 보건소에 도착한 시간이 12:30분이었다. 주말은 13:00까지만 PCR 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검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빠르게 검사를 받았다.
아침에 시끄럽게 핸드폰이 울려 됐다. 동대문구청에서 온 문자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나는 PCR 검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검사일로부터 7일간 집에만 꼼짝없이 지내야 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란 믿었던 자가격리 생활이 펼쳐진 것이다.
내 몸은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고 증상이 심해졌다. 특히 미각상실이 매우 짜증 났다. 뭘 먹어도 고무를 씹어먹는 듯한 느낌을 줬다. 냄새도 맡지 못했다. 코가 막히는 건 아닌데 공기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3끼를 다 챙겨 먹었다.
나는 코로나에 좋은 음식들과 상비약 정보를 찾아보았다. 특히 물을 많이 마시라는 조언이 많았다. 나는 격리 생활을 위해 2L짜리 생수 6개를 부모님께 부탁했다. 또한 목에 뿌리는 인후염 치료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종합감기약과 타이레놀을 챙겼다. 이제부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증상은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목이 간지럽고 기침만 하는 수준으로 가라앉았다. 면역에 좋은 음식들과 약을 꾸준히 복용하였다. 평소에 주면 먹지도 않았을 홍삼액과 비타민들을 꾸준히 복용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컨디션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의 반응도가 달라졌다. 나는 만성피로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려보니 왜 피로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영양제도 챙겨 먹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이번에 코로나에 걸려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영양제와 좋은 음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7일간의 격리기간 중 3일이 지났다. 코로나에 걸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분명했다. 잃은 것은 미각과 후각이었다. 지금은 조금 미각이 회복되었지만 건강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관리를 안 하면 후유증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미각을 잃은 채로 생활해야 된다는 글을 보았다.
코로나 후유증을 줄이는 방법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또한 물이 중요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어야 한다. 하루 최소 2L의 물을 마셔야 코로나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나는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특히 미각이 일부 회복되었고 후각도 회복되고 있다.
코로나로 얻은 것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격리가 되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밥 먹는 것도 일일이 배달로 시켰으면 비용도 부담됐을 것이고 필요한 물품들도 수급받는데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매 끼니마다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챙겨주셨다. 또한 필요한 방역 물품들과 생필품들을 챙겨주셨다. 나는 새삼스럽게 부모님의 사랑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가족의 코로나 전염을 막기 위해 나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있으니 힘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버지도 양성 판정을 받으셨다. 이제 우리 가족 중에 어머니만 감염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 또한 격리 생활을 하고 계시다. 어머니는 전화로 너무 외롭다고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매우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번 주 금요일에 격리가 해제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으며, 격리 혜제가 된다면 가정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격리생활은 그야말로 무력하다. 할 수 있는 게 제한되다 보니 힘이 드는 것이다.
오늘 날짜로 오미크론 감염자는 13만 명이다. 내가 처음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가 25만 명이었으니깐 코로나 확진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오미크론은 전파력이 강한 대신 치사율이 매우 낮다고 한다. 해외 오미크론 사례를 살펴보면 오미크론이 사회적으로 대유행하고 엄청난 감염세와 더불어 빠르게 소실된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아마도 3월 말에서 4월 초쯤이면 오미크론은 토착병으로 구분되어 길고 길었던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껏 밖에 돌아다니지는 말자. 오미크론은 감기와 독감보다는 더 아프다. 죽지만 않을 뿐이다. 특히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치사율이 6배나 증가한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