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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닥 Dec 03. 2021

나는 어른 아이일까?

겉모습만 어른인 사람들

나는 아직도 내가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상상하던 어른은 확실히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어른은 어떤 일이든 책임지고 잘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스스로가 아이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어른 아이의 뜻은 어른이지만 행동과 사고가 아이 같은 것을 뜻한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아이 같은 성인들이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굉장히 가난한 시절을 보내오셨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환경은 어떤 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가난한 환경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하마터면 걷지 못할 뻔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었나 싶다. 인생의 대부분을 반지하와 쪽방을 전전했다. 그때 나는 방치 수준으로 자라왔다.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해야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이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게이머처럼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은 그냥 도피처였다. 나에게 있어 게임은 이 현실을 잊기 위한 마약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게임 CD를 사기 위해 엄마를 보채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PC게임을 CD의 형태로 판매했다)


여기서 나는 게임이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게임이 그나마 접근과 몰입이 쉬운 장르라 도피처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방치된 대가는 컸다. 나는 6살에 트럭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허벅지와 척추가 으스러져 걷지 못할 거라고 병원에서 진단받았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기적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횡단보도 조차 내 마음대로 건너지 못하게 하셨다.


가난이 이렇게 무섭다. 아이를 돌볼 수 없으니 혼을 내고 집에만 있게 한 것이다. 어디 나가서 놀면 또 다칠까 봐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나는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잘 지킨 내가 더 이상해 보인다.



착한 아이 증후군?

어른이지만 아직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



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던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거 같다.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었다. 물론 나는 실제로도 착하다. 좋지 못한 환경은 착한 아이라는 강박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어떤 촉매 역할을 해주는 거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나까지 말썽을 부리면 가세가 기울 거 같았다. 그런 느낌을 항상 받아왔기 때문에 착한 아이 증후군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항상 위축된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자원이 없으니 도전을 꺼리게 된다. 도전을 안 하니 성장을 못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뒤처진다. 그리고 위축된다. 이 악순환이 끊임없이 내 삶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착한 사람으로 살기로 한 거 같다.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착하지도 않으면 완전히 사회에서 버려질 거 같았다.


이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 내 상황은 훨씬 좋아졌지만 어른 아이처럼 돼버렸다. 나의 이상향은 독립하고 멋지게 사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어렵고 생각보다 더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로 머물고 싶은 사람은 이런 책임에 부담감을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아이 같다. 나이는 어른인데 겉모습도 하는 행동도 아이 같다. 창피한 일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이로는 살 수 없다. 그것은 인생을 제대로 산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게임과 술을 끊어냈다. 나는 타인보다 너무나 뒤처져있어 유흥을 끊지 않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끊어낸 것이다.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다. 그래서 술과 게임을 끊었다.


나는 최근까지도 내가 어른 아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멘토들의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내가 스스로의 나이에 맞지 않게 살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 조급함이 생겼다. 성인이 되자마자 꾸준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땅에 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법

일, 사랑, 관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 세 가지를 알려준다. 첫 번째는 자립하는 것이다. 한때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나 또한 캥거루족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립한다는 기준을 꼭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면 자립을 하는 순간 재테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용이 나가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너무나 오른 물가가 문제다. 그런데 월급은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당연히 돈을 모으려면 부모님과 사는 것이 더 유리하다. 부모님과 살 수 있다면 최대한 함께 사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다. 굳이 사회적 시선에 밀려 독립할 필요가 없는데 무리하게 독립을 할 필요는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계속 함께 사는 것이 좋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생활비를 드리고 자기 방은 스스로 치워라. 자기가 입을 빨래 또한 스스로 하는 것이 좋다. 함께 살지만 독립한 것처럼 생활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립한다는 것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키우는 것을 뜻이다. 만약 회사를 다니거나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자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커리어가 경력이 되지 않거나 미래에 어떤 희망도 꿈도 없다면 스스로 벌 수 있는 부업을 찾아봐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사랑이다. 요즘은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도 그중에 하나이다. 정말 힘들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아예 놓고 사는 것과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사랑을 하고 연애와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갖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좋은 일이다.


세 번째는 뜻이 통하는 동료를 사귀는 것이다. 나는 친구보다는 동료를 모으는 것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친구도 물론 좋지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료가 더욱 중요하다. 관심 분야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동료를 모아야 한다. 이는 정말 중요하다. 당신이 관심 있어하고 생산성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혼자 할 때 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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