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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닥 Apr 26. 2023

갈라진 인류  (1부)

글토닥 단편소설 ep2

먼 미래 인간의 성격 유형은 고정되었다. E의 유형으로 태어난 아이는 외향인으로 분리되었다. I의 유형은 내항인으로 구분되었다. 과거에는 재미로만 분석했던 성격 유형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내향인은 점점 극도로 외출을 자제했고 외향인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정신과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시간이 지나자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런 현상이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성격 분류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외향인은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내향인은 세명 이상의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아도 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외향인은 서로를 끌어당기듯이 함께 있었다. 내향인은 집에서 모든 업무와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외향인과 내향인은 점차 분리되었다.



천년 후.



외향인과 내향인은 오랜 시간 서로 떨어져 살았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 외향국과 내향국으로 나뉘었고 인류는 두 종족으로 나누어졌다. 외향인은 소심한 내향인들을 경멸했다. 내향인들도 시끄러운 외향인들을 미워했다. 외향인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매일 파티와 축제가 열렸다. 외향국에서는 유흥과 놀이 대중음악산업이 발달하였다. 



특이하게도 외향국에서는 그 어떤 전기차도 볼 수 없었다. 외향인들은 내연기관 차만 고집했다.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거리를 가득 매웠다. 화려하고 재밌는 것이 넘쳐났다.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놀거리가 많은 만큼 사람들도 언제나 북적였다. 이와 반대로 내향인들의 나라에서는 잡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자동차는 전부 무소음인 전기차로 대체되었으며, 내연기관 차는 불법으로 지정되었다.



내향국에서의 축제는 1년에 딱 한 번 허용되었다. 그것도 시끄러워서는 안 됐다. 법으로 몇 데시벨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지정되어 있었다. 축제라고 해봤자 다 같이 모여 책을 읽거나 간단히 와인을 마시는 수준이었다. 대화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고 서로 떨어져 앉아 각자 할 거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형태였다.



내향국은 예술과 문학이 꽃피웠다. 엄청난 미술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내향국에서의 예술품은 외향국에서도 비싼 값에 밀수되었다. 내향국과 외향국은 오랜 시간 동안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생긴 비극이었다. 그렇기에 정식 루트로는 문화를 교류할 수 없었다. 내향국과 외향국은 벽을 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내향인들은 외향인이 만들어낸 자극적인 놀이 문화와 콘텐츠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불법이었지만, 내향인 중에서도 몰래 외향국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의 반역자만이 외향국의 콘텐츠에 흥미를 보였다.



외향국에서 사는 수지라는 20대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향국의 권력자였다. 수지는 외향적인 성향의 끝판왕인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외향국의 아이는 무조건 외향적이었지만, 수지는 조금 달랐다. 수지는 내향국이 만들어낸 '책'이라는 물건에 흥미를 보였다. 



정식으로 알려진 바가 없는 ' 책 ' 은 나무 펄프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한 콘텐츠 박스였다. 수지는 왠지 모르게 책이라는 녀석이 가지고 싶었다. 평소에도 조금씩 내향적인 성향이 수지에게 발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외향국에서 내향적인 성향은 죄로 간주되기 때문에 숨기고 살았다. 수지는 외향적이면서 내향적 성향을 동시에 지닌 돌연변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지의 아버지가 밀수된 불법 예술품들을 집으로 가져오셨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 이 지루하고 불경스러운 '책'이라는 물건을 봐라. 이 얼마나 볼품없는 쓰레기 인가? 나무가 아깝구나. 나는 내향인이 만들어낸 이 재미없는 물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껄껄 "



수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모난 박스처럼 생긴 책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그림과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수지는 가슴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수지의 기대감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더니 책더미와 미술품에 불을 질러버렸다. 그걸 지켜보던 가족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 재미없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저 끔찍한 물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전부 사라져야 합니다!!!! "



아버지와 똑 닮은 오빠들이 거들었다. 불길은 번져 나갔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수지는 조용히 일어나 소화기로 불을 껐다. 가족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두 밖으로 나가 파티를 즐겼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지는 잿더미 속에서 아직 타지 않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수지는 그 책을 보자마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수지는 빠르게 책을 수거한 후 가슴속에 숨긴 채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수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들춰보았다. 심장이 콩닥됐다. 수지가 살면서 접한 책의 형태라고는 패드에 저장되어 있는 PDF 교과서가 전부였다. 그 마저도 딱 필요한 내용만 적혀있는 기록물 수준이었다. 



그녀가 펼쳐든 건 소설책이었다. 수지는 밤새 책을 읽어나갔다. 문장 구조로 쓰인 책의 형태는 처음 접해보는 그녀였다. 그녀는 소설 속에 빠져들었다. 활자가 내보이는 예술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소설을 읽으며 감동을 하거나 분노하거나 즐겁거나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살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 재미있다. 정말이야... 파티나 드라마보다 훨씬 " 



수지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수지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 있었다. 스릴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향국의 콘텐츠는 소비해서는 안 됐다. 내향국은 완전한 적국이었다. 수지가 사는 나라에서는 내향국에 사는 사람들은 조용한 악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수지가 읽은 책은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었다. 그동안 접하고 배운 내향국의 이미지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작은 호기심이 불러 올 파국과 비극을...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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