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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닥 Dec 12. 2021

당신이 재수 없게 왕따가 됐다면

왕따는 운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따돌림에 대한 추억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엄청난 매력쟁이 거나 단순히 운이 좋았을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따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왕따는 운이다. 당신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다만 반드시 지켜야 되는 예의나 위생을 지키지 않았다면 당신 잘못이다. 잘 씻지 않아서 몸에서 악취를 풍긴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예의란 상대방과 인사를 하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뜻한다. 만약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서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하다면 왕따를 당하게 된다. 이는 본인이 고쳐야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에 두 가지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왕따를 당한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가해자들의 문제다. 지금부터 왕따를 당하는 이유와 그리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등을 공유할 생각이다.





부족하거나

아니면 뛰어나거나

질투의 화신


 

사람은 질투의 동물이다. 자신보다 뛰어나면 자신의 수준이나 더 못한 상태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반면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무시하거나 짓밟는다. 이는 어떤 사람이든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왕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뉴스나 학교에서 연신 왕따에 대한 인식 변화를 노력해보지만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이유는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해봤자 대중은 피해자가 은연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까?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하나 있다. 평균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왕따의 정확한 뜻은 무리에서 배제된다는 뜻이다. 이는 무리가 당신을 같은 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무리 안에 과반수가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해야 왕따가 성립된다. 만약 세명의 무리라면 두 명이 동의를 해야 왕따가 성립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왕따보다는 갈등이 생긴다. 서로 의견이 달라 생기는 갈등과 왕따는 다르다. 즉 당신은 무리에서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잘못인가? 아니다. 단지 그 무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뿐이다. 면접에서 탈락한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깐 당신은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교를 다녀야 되는 학생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런데 반 전체로 부터 왕따를 당한다면 전학을 고려해봐야 한다. 또는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전부 해봐야 한다.


왕따는 남들보다 뛰어나도 당한다. 이는 타인보다 조금 뛰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면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라는 견적이 나오는 뛰어남이다. 압도적 뛰어남은 존경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앞서 말한 뛰어남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당신이 왕따를 당했다면 똥 밟았다고 생각해야 된다. 갑자기 밉상이 될 수도 있고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요인과 타이밍이 왕따라는 현상을 만든다. 그렇다면 이 모든 원인은 당신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왕따를 당한다고 당신이 스스로를 바꿔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또 다른 이유가 만들어질 테니깐..



튀어나온 못은

망치질을 당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가 특색이 있고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그런데 다들 비슷한 취향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도 있다. 이걸 어기는 사람은 왕따가 되거나 리더가 된다.


나는 어릴 적에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예민했고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나는 왕따가 될 만한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왜소했으며 자신감도 없었다. 집도 가난했다. 다른 아이들은 항상 새 옷을 자랑했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작은 창고 같은 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주 오래된 한옥집이었는데 그곳 단칸방에서 월세로 살았다. 그곳은 3평짜리 단칸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집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화장실도 밖에 있어서 정말 힘들었다.


평범할 수 없는 나는 튀어나온 못이었다. 언제나 망치질의 대상이었다. 나는 말이 없는 아이로 자랐다. 말을 해봤자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별로 없다. 아마도 오랜 기간 경험해야 했던 가난과 왕따로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다. 다행인 것은 학교폭력에는 시달리지 않았다. 뉴스에 나올만한 미친 짓은 당하지 않았다. 아마도 말을 줄이고 조용히 살아서 그나마 학창 시절을 잘 넘어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왕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아이돌 그룹에서도 왕따로 팀이 해체되거나 파국을 맞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왕따를 당한 사람은 못난 것인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왕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해자는 멈추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왕따라고 느껴진다면 조금 안타까운 상황이다. 왜냐면 그런 느낌을 받을 정도라면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움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왕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타인의 감정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위를 맞추어도 깊게 박힌 미운털은 빼기 힘들다.


만약 그 무리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냉정하게 대한다면 그 무리에서 나오길 바란다. 그 무리는 당신이 나가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의 가치를 몰라주고 그따위 대접을 한다면 그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는 없다. 당신은 멋진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깐 왕따를 당한다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왕따든 진따든 그런 말들은 전부 어떤 차별과 혐오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를 자주 사용하거나 가해자로 빙의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똑같이 돌려받게 될 것이다. 세상은 주는 대로 받게 돼 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유 없이 미워서 아니면 질투가 나서 상처를 준다면 그 상처는 다시 돌려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제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된다. 자존감을 잃지 말고 혼자서도 괜찮다는 암시를 스스로 걸어야 한다. 분명 괴로울 것이다. 무리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꽤나 큰 아픔이다. 그래도 괜찮다.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면 된다. 당신을 지지해줄 사람은 앞으로도 많이 만날 것이다. 그러니깐 당신을 따돌리는 사람들 때문에 당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 말자.


왕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가해자들로부터 당신이 떠나는 방법뿐이다. 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방법으로든 바꾸기 힘들 것이다. 성인이든 학생이든 모든 왕따의 알고리즘은 같다. 왕따는 사람이 모인 곳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왕따를 당한다면 재수가 없는 것이다. 왕따의 원인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못나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다름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성숙한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적다.


만약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왕따 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왕따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는 것이 왕따이다. 가볍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이 무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느껴진다.  왕따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만약 가해자라면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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