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뜻이다. 나 또한 얼죽아 회원으로서 내 취향이 사회적 밈이 되고 있어 기분이 좋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겨울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나는 추운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추운 겨울에도 포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식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 특유의 고소함과 시원한 청량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이유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신 날을 기억한다. 나의 아메리카노 맛의 평가는 이러했다. "도대체 이딴 걸 왜 마셔?"였다. 하지만 어느새 아메리카노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렸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 맛없는걸 왜 마시냐 했지만 한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마시다 보니 술 보다 인생이 더 쓰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맛이란 상황과 환경에 맞게 변하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어릴 때는 맛있다는 걸 모르는 맛을 나이가 점차 들면서 맛있다고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뭐길래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칠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에 얼음을 탄 아주 단순한 음료다. 카카오톡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선물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편의점, 이디야 등 카페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이렇게까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진심인 민족이었을까?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는 무엇일까? 바로 커피이다. 2018년 기준으로 성인 한 사람당 커피를 일 년에 350잔 마신다고 한다. 한국인은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신다고 보면 된다. 커피의 종류는 많다. 그중에 가장 선호되는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커피 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가격이 제일 싸서 대중들이 많이 마시는 걸까? 그 이유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내 생각에는 조금 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세계적으로는 레귤러커피라는 드립식 커피를 많이 마셨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타벅스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예상해본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의 커피 문화를 전파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현재는 전 세계에 스타벅스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다.
1999년 서울 서대문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매장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새로운 커피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가 전국에 퍼지면서 점차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인기가 상승하더니 2007년에는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판매율 1위 음료가 되었다.
한국인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이유
한국의 여름은 너무 덥고 습하다. 그래서 바로바로 마실 수 있는 아이스음료가 옛날부터 인기가 많았다. 달거나 우유를 탄 커피는 좀 텁텁하거나 살이 찐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노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음미하거나 맛으로 마신다는 느낌보다는 에너지 드링크의 형태로 마신다. 즉 앉아서 커피를 즐길 여유 따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민족에게 잘 어울리는 음료는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카페인을 빨리 흡수하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설도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천천히 마셔야 된다. 그래서 카페인의 각성을 느끼기 어렵다. 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단번에 쭈욱 들이킬 수 있기 때문에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즉 점심을 먹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된다. 각성제로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좋다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문화는 조금 슬플 때도 있다. 유럽이나 외국의 카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자체를 팔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한다. 서양 쪽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여행 와서 제일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왜 커피를 얼음에 타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커피 맛과 향에 진심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거 같다.
커피를 맛과 향으로 음미하는 것이 정석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각성제나 소화제로 활용한다. 분명 맛으로 드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앞서 말한 이유로 커피를 마시는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인은 1시간 안에 점심도 그리고 커피도 마셔야 된다. 휴식시간조차 각성의 시간으로 사용해야 된다니 너무 슬픈 일이다.
만약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면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인기가 있을 것이다. 커피를 식혀서 마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1시간은 정말 짧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인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한국의 기후조건 그리고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고된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는 충분히 가치 있는 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