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존재할까?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농밀한 사건의 집합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는 결정할 수 없다. 또한 삶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통받고 애쓰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운명이라는 힘은 개인의 무력함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안타까울 정도로 그들의 노력과 투쟁을 깔아뭉갠다.
우리는 이런 거대한 힘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하늘의 뜻이나, 신의 섭리, 숙명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이 운명이라는 힘을 경험해 왔고, 그 경험들은 " 결과는 하늘만 알 뿐이다. "라는 격언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위대한 현자들은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빛과 어둠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순처럼, 자유의지와 운명이 대립하면서도 균형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그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언어를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을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나서부터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또한 인류의 도덕적 기준과 현자들의 가르침은 개인의 자유의사와 결정을 존중한다.
게다가 인간은 끊임없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는 분명 자신의 내면에 운명을 극복할 자유의지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인류는 운명에 지배당하기도 하지만, 운명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기묘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류의 모순된 경험은 끝없는 논쟁을 불러왔다. 인간은 운명에 지배당하는 존재이며,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계급 사회를 추앙하며,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인간이 그 어떤 시련과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인간이라도 평등하며, 적절한 환경과 교육이 갖춰지면, 성장을 통해 운명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유의지의 힘을 믿으며, 성장 마인드셋을 지향한다.
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원칙은 없는 걸까? 여기서 '인과의 법칙'으로 운명과 자유의지의 대립을 풀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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