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녀를 죽여야 하지만 점점 사랑하게 된 남자
소설 <다프네를 죽여줘>는 라이트 문예 장르와 해외 소설을 주로 다루는 출판사 오팬하우스가 출간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퇴마록> 등 인기 있었던 장르 소설을 다룬 오팬하우스가 선택한 신작이라 흥미로웠다.
소설의 표지를 보면 마치 영화 <기생충>의 등장인물처럼 눈이 가려져 있다. 모자이크는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한 장치인데, 마치 다프네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옆을 보면 '25세/여성, 파리 거주, 자살 두 번 실패'가 적혀 있어 마치 정신과 환자의 진료차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 우리 독자는 이제 다프네의 정신과 의사가 돼 그녀의 삶을 훑어보자.
다프네는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처럼 고귀하고 아름답게 죽고 싶어한다. 오필리아는 햄릿이 미쳐 자신을 매도하자 큰 슬픔에 빠져 강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빠져 죽은 인물이다. 오필리아는 순수함을 상징한다.
반면, 다프네는 스스로를 순수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매도한다. 그녀는 바람을 피우고,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당했으며, 칠칠맞지 못하다.
그렇다. 나는 악녀고, 화냥년이고, 쌍년이고, 창녀다.-p.31
결국 그녀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녀는 자살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희망하는데..
좋은 안색과 평온한 얼굴, 완전무결하게 새하얀 이마, 마지막 키스를 기다리는 촉촉한 붉은 입술을 하고 죽고 싶다. -p.43
그렇지만 그녀는 죽지 못한다! 차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를 시도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동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 토를 한다. 강에 몸을 던지지만 강물이 역한 냄새가 나서 물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두 번의 자살 실패를 겪은 다프네는 자살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그가 바로 마르탱.
아니에요. 저는 죽는 데 동의한 사람만 죽여요!-p.54
자살 청부업자치고는 매너를 따지는 이 남자는 점점 다프네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다프네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을 공포스러워한다.. 문제는 그가 열흘 안에 다프네를 죽이지 못하면 '성도착자나 사이코패스'같은 이상한 놈들이 대신 다프네와 그를 죽이러 올 것이라는 것이다.
다프네도 이런 마르탱과 마음을 나누면서 점점 살고 싶어지는데...
이렇게 이상한 관계인 두 사람은 의사 모나를 찾아간다. 이전에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잘못 진단해서 가석방에 동의했다가 사이코패스가 아이 둘을 죽이고, 그 여파로 자신도 정신과 의사에서 퇴출당한 모나 말이다.
모나는 이 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두 사람을 살리고 싶어진다.
소설 제목은 <다프네를 죽여줘>지만 메인 캐릭터들이 다프네를 살리고 싶어하는, 심지어 다프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살리고 싶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기묘한 심리 변화를 묘사해서 재밌었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핵심은 다프네가 살고 싶어지면서 점차 주체적인 여성으로 바뀐다는 데 있다. 다프네의 이름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다프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님프 역할이다. 님프는 산이나 강, 골짜기 등에 머무는 여성 정령으로 신과 영웅들의 활약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신으로부터 애정을 받는 대상으로 님프가 많이 나온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다프네는 아폴론 신의 구애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도망치다가 월계수로 변한다.
이렇게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듯한 다프네. 남자들의 외설적인 농담을 가만히 들어줘야 하고, 남자친구가 자신을 탐탁치 않게 느끼는 친구들을 데려오는 것도 묵인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자신의 진솔한 감정에 따라 마르탱을 사랑하고, 마르탱과 자신을 해치려는 청부업자들에게 부지깽이를 휘두르기도 한다.
그녀가 점점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법을 알게 되는 모습을 보면, 모나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죽음은 새장을 부술 수 있지만 새는 죽이지 못한다-p.164
다프네가 수많은 죽음을 시도했더라도, 그녀의 내면에는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잠재력이 있었다.
이 소설에는 외설적인 표현이나 직접적이고 강렬한 언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보기에 거북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파도처럼 휩쓸려 오는 소설이다. 이는 작가의 삶과도 연관이 된다.
작가 플로랑스 멘데즈는 자폐스펙트럼과 정신장애를 극복한 경험을 소재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전달하는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부딪혀온 수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모습이 마치 소설 속 다프네와 닮아 보인다.
특히, 소설의 결말이 꽉 닫혀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소설이 자살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우울함을 느꼈던 독자들도 점점 결말에 다가갈수록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