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_조예은

사랑이 뭐길래

by 시티오브

출판사: 안전가옥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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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그라운드 시소 <유토피아: nowhere, now here> 전시회


2년 전에 성수 그라운드 시소에서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린 적 있었다. 소설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단편 ‘공생가설’을 각색한 전시다.

유토피아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리운 장소를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가보고 싶은 장소가 유토피아다.

이 전시에는 수많은 유토피아가 등장했다. 대부분 우리가 흔히 알던 장소에 사람이 없고, 물이 가득 채워져 있거나 사람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공간들이었다.


조예은 작가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진다. 꿈과 환상의 놀이공원, 뉴서울파크에 방문한 사람들이 한 젤리장수가 나눠준 젤리를 먹고 몸이 조금씩 녹아내려 젤리로 변한다. 말 그대로 '대학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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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장수는 젤리를 나눠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 젤리를 먹으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젤리를 자신의 주변 사람과 함께 먹으면, 몸이 녹아내릴 때 서로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젤리로 변하면서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녹아내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젤리를 먹는 것을 택한다.

배경은 디스토피아인데 분위기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지는 소설. 이 아이러니함을 조예은 작가는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젤리로 변한 사람들의 속사정과 그들의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군상극 형태로 표현된다. 읽다 보면, '결국 다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수많은 애정의 형태를 그려냈다. 그리고 각 인물마다 상징하는 애정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면서 읽으면 이야기가 더 와닿는다.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읽는 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


첫 번째 인물. 주아(전: 인간/현: 움직이는 젤리)

상징: 순수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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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그냥 날 깜빡한 거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리 없는걸."

"하지만 난 가야 해. 엄마가 나를 찾았듯이, 이번에는 내가 엄마를 찾아야 해"


주아는 '미아'다.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주아는 평소 형편이 어려운데도 항상 자신이 인형을 사달라고 떼를 쓰기 때문에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가 결국에 자신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한다.


주아는 타인에 의해 젤리를 먹게 된 인물이다. 이 이야기에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인물들은 젤리를 일부러 먹는데, 주아는 이미 엄마의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젤리를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주아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젤리로 변하고 나서도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뉴서울파크에 사는 고양이를 구하고, 고양이가 떠나지 말라고 말해도 스스로 움직여서 엄마를 찾으러 떠난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애정을 건넬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두 번째 인물. 유지(전: 인간/현: 젤리)

상징: 어긋나 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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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아빠는 나 없이 어떻게 살려나 몰라. 누가 누구를 키우는지."

"우리 엄마 아빠는 종종 날 잊어버려"


유지도 주아와 마찬가지로 뉴서울파크에서 길을 잃는다.

사실 유지는 주아와 다르게 진짜로 찾으러 올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모님은 이혼 위기라 유지를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지는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성숙하다. 주아를 만났을 때도 침착하게 위로하는 모습은 애어른을 연상시킨다. 또, 젤리장수가 나눠준 젤리도 함부로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유지는 결국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젤리를 자의적으로 먹는다. 엄마와 아빠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사이좋은 부모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유지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다. 그녀의 애정은 어긋나 버렸다.



세 번째 인물. 주아의 엄마(전: 인간/현: 젤리)

상징: 희생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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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러면 엄마 너 두고 간다"

"주아야!"


주아의 엄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서울에서 당장 일을 시작했던 사람.

또, 자신이 살던 집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뉴서울파크가 들어섰다.

이렇듯 그녀는 삭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래서 주아를 혼자 키우면서 가끔 주아의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주아를 잃어버리자 앞뒤 안 가리고 '다시는 주아의 손을 놓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한다. 그녀도 타인에 의해 주아와 함께 젤리를 먹게 된다. 그리고 주아와 몸이 합쳐진다.


나중에 주아가 자아가 있는 젤리로 변했을 때, 그녀는 주아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 주아를 위해서 자신도 포기할 만큼 희생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조건 없는 사랑을 줬기 때문에 딸인 주아도 뉴서울파크 고양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행동이 선한 역의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인물의 마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조예은 작가는 독특하게 그려냈다.



네 번째 인물. 사준

상징: 소시오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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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에 있는 금액+54+A 그리고 A, A, A..."

"이 악마야! 내 핸드폰은 어디에 있어?"


사준은 뉴서울파크에서 마스코트 캐릭터인 꿈곰이의 탈을 쓰고 일하는 직원이다. 인형탈의 해맑은 얼굴과는 다르게 사준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에만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도 서준은 계산부터 때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준은 인물들 중 유일하게 젤리로 변해 죽지 않고, 젤리에 숨이 막혀 인간인 상태로 죽은 인물이다.


작가는 애초에 사준이 다른 사람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젤리가 필요 없다고 봤던 것 같다. 애정보다 물질이 우선인 사람, 그래서 사준은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그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그 벌로 젤리가 된 사람에게 숨이 막혀 죽게 만든 것이다.


소설에서는 사준의 서사가 자세히 풀어지는데, 그럼에도 그는 욕망에 충실한 악역이기 때문에 동정받지 못한다. 인과응보가 생각나는 인물이다.



다섯 번째 인물. 현경

상징: 맹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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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치워 버리고 싶다"

"우리는 악마와 함께 춤춘다"


현경은 고부갈등과 부부갈등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 결벽증도 이 때문에 생겨났는데, 그녀는 제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들은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광기 어린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젤리장수를 맹목적으로 믿는다. 일종의 사이비 신자와도 같다. 그래서 그녀는 자진해서 젤리를 먹고, 청소부들에 의해 결국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던 '청소'를 당하게 된다.


조예은 작가는 광기 어린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특히, 결핍이 광기로 변하는 순간을 잘 포착해서 비뚤어진 애정을 가진 사람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한다. 이런 인물들은 조예은 작가의 호러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현경도 그렇다.


이 다섯 인물 외에도 각자 자신만의 애정 형태를 가진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이 왜 그런 사랑을 하게 됐으며, 왜 '젤리를 먹는/먹지 않는'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다른 작품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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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에 조예은 작가의 또 다른 책 <적산가옥의 유령>을 본 적 있다. 이 소설은 적산가옥에 얽힌 한 가문의 이야기를 주인공이 파헤치는 흐름이다. 과거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마치 저주처럼 후손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이 메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불호였다. 인물들의 서사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반복적이라 몰입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러지만 심심한 호러였다.


반면,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은 전개도 빠르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촘촘하게 묘사돼 있어 훨씬 '공포감'이 잘 와닿았다. 조예은 작가의 장점은 읽고 나면 '오싹한 여운'이 남는다는 것인데, 이 소설이 그랬다. 호러 입문자도 편하게 읽기에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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