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농장의 닭 시점으로 보는 인간들의 잔인함
⭐별점: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후기가 하나같이 웃기다. '복날 음식을 먹은 나를 반성하게 된 책'
책은 닭 농장 겸 식당을 운영하는 성호가든의 주인 사람들을, 닭과 개가 관찰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일단 설정부터도 '닭 농장'에 사는 '닭'이라는 점에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같이 자신의 친구들이 잡아 먹히는 닭의 시점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상상해 본 적은 처음일 것이다.
주인공 찰스는 다른 닭들과 다르게 자의식이 있다. 그래서 도둑과 손님을 분간도 못하고 짖는 개 메리를 향해 욕을 하기도 하고, 주인이 닭을 잡으러 올 때는 반드시 눈을 보고 피해야 한다는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의 본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닭장에 들어오기 전 닭장 안을 바라보는 저 측은한 눈빛. 그래도 오분 뒤면 닭 한 마리가 저 남자의 손에 목이 비틀려 버둥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한편, 개 메리도 자의식이 있다. 메리는 찰스와 적대적인 인물이다. 그는 주인 남자가 닭을 처리한 후 남은 '닭의 창자'와 '달걀'을 먹는다. 즉, 메리와 찰스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다.
그러나 메리도 모두 주인 남자의 발길질이나 폭력 앞에서는 허약한 개일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메리는 찰스와 다르게 주인 남자에게 충성하지만 똑같이 인간의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즉, 충성도와 상관없이 인간은 동물을 잔인하게 대한다.
그래서 마치 톰과 제리처럼, 메리와 찰스는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내심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들의 본성이 점점 드러난다.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추파를 던지는 주인 남자를 모른 체하는 주인 여자, 맹인인 주인 여자에게 효과가 없는 약을 건네는 주인 남자, 새로 산 사냥총을 자랑한다고 마구잡이로 닭을 쏘는 직업소개소 사장.
서로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이용한다. 특히, 주인 남자의 품 안에서 갇혀 있다가 '성호가든'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주인 여자가, 점점 자신이 혐오했던 주인 남자를 닮아 가는 과정도 소름 돋는다. 그녀는 앞이 안 보여서 집 안에만 갇혀 있었지만, 나중에는 사냥총을 집어 들어 주인 남자를 겨눌 정도로 능동적인 인물이 된다.
책의 극 초반부에 찰리가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몸속에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 어느 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영혼이 바람에 실려 하늘을 떠다니다가 바람이 멈춰 선 곳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인간들이 닭에게 먹이는 항생제가 몸속으로 퍼지는 것처럼 한 마리 닭의 살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 말은 초반에 볼 때는 철학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찰스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왜 '찰스, 메리'라는 인간의 이름을 동물들이 가지게 됐는지도 드러난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욱 격동적으로 변하고,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대놓고 살인마나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웬만한 스릴러 소설보다도 이 이야기가 더 소름 돋았다. 아마,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들과 장소가 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소설' 버전과 '희곡' 버전이 있다. 나는 이 중에서 희곡 버전을 읽었는데, 재밌는 비언어적 설정들이 많았다. 자의식이 없는 닭들은, 회전목마에 인형으로 걸어둬서 찰스와 구분 짓는다거나 얇은 그물망으로 찰스와 다른 인물들이 있는 곳을 구분해 둔다거나 하는 설정들이다.
읽으면서 자연스레 무대가 상상돼서 더 흥미로웠다.
이 희곡을 쓴 한윤섭 작가는 동화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이 희곡과 마찬가지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주제로 다룬 동화를 많이 썼다. 그 예로 문학동네에서 발행한 『해리엇』이 있다. 이 책은 호주의 동물원에서 175년이라는 오랜 삶을 살아온 한 갈라파고스 거북의 실화를 다뤘다. '동물원이든, 숲이든' 어느 곳에서도 인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동물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지성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월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잘 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허를 찌르는 반전을 느끼고 싶다면, 이 희곡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