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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21. 2020

온종일 외출권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

주말 아침이다. 조용히 책을 들고 계단을 통해 아들방으로 간다.  아들은 자다가 깨서 항상 안방으로 오기 때문에 침대에서 3명이서 함께 자는 경우가 많다. 아직 아이들이 깨지 않는 조용한 시간이다. 일찍 일어나서 홍차를 끓인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알람은 항상 새벽 5시. 4시 30분에 일어나니 저녁때가 되면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5시에 일어나면 피로감이 조금 덜 하다. 주말 아침은 더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보통 7시쯤 일어난다.      


대여섯 페이지 정도 읽었을까. 아들이 들어와 내 옆에 눕는다. 아이가 아직까지 나를 찾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조용히 보내고 싶은 나는 내 날아가는 내 시간과 공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곧이어 딸아이까지 온다.  좁은 싱글 침대에 누운 우리는 서로 자리 쟁탈전이다. ’ 비켜라 일어나라 내 자리다.‘ 양쪽에서 도돌이표로 울어댄다. 주말 아침시간은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코로나로 거의 24시간 함께 있는 아이들. 주말에만 시간이 가능한 남편. 지난주에는 시댁에 아버님 제사를 지내고 왔다. 장을 몇 번씩 보고 재료를 다듬고 제사상을 차린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단출해지긴 했지만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 여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은 의문을 던지고 싶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 그제야 역할의 옷을 벗는다.  몸은 피곤한데 아침에 벌떡 몸이 일어나 졌다. 다행히 다음날 휴가를 낸 남편 덕분에 그날은 ’ 온종일 외출권‘을 얻었다. 어렸을 적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을 손에 쥔 듯 마음이 동동거렸다. 며느리, 엄마, 여자의 역할이 아니라 영혼과 마주하고 싶었다. 아침식사를 서둘렀다. 아이가 태어나서 11년째. 하루에 밥 세끼로 한다면 11년 동안 12,045끼. 아이가 손가락 까딱 하지 않아도 밥이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차려주면 되는 걸까.      


‘여자들은 푸딩을 만들고 스타킹을 깁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자수 놓는 일이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너무 편협하다’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다.      


카페로 향한다. ‘온종일 외출권’이니 동네를 벗어난다. 선택적 고독을 택했다. 당하면 외로움이지만 선택하면 고독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색소음이 나는 집중 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매일같이 먹는 그까짓 밥쯤이야 한 두 끼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글을 쓰다 미쳐버린 여자가 맞은 비극적 최후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가 글을 쓰면 미치거나 불행해지거나 혹은 처참하게 죽게 된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관점에 나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방 안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훔쳐갔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쓸 때만 ’ 앞으로 나아가는 ‘ 자신을 느꼈다. (41쪽, 장영은 –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의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당시 자신이 느꼈던 역경과 고난을 글쓰기로 이겨낸 작가이다. 치열하게 읽고 책을 사랑하고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는 그녀의 삶이 존경스럽다. 차별에 맞서서 훌륭한 작품을 냈던 그녀.  글쓰기는 그녀에게 험난한 운명의 대피소가 아니었을까.  

    


<연인>, <히로시마 내 사랑>, <풀잎은 노래한다>의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 질병과 죽음, 가난과 고독에 몸서리쳤지만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그 공포는 사라졌다 ‘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며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문학 작품을 읽고 나서 재미있다 또는 인상 깊었다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들이 있다. 단지 도리스 레싱이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원이 있는 커다란 하얀 집, 능력 있는 남편,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4명의 자녀, 집안일을 담당하는 파크스가 있다. 부족할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 수전은 행복하지 않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는 않았다. 수전은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을 원했다. '나 자신이 되는 법'을 온전히 배우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 '19호실'이 있는 호텔로 간다. 호텔에서 그녀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간절히 원했다. 아내, 엄마, 안주인의 역할의 옷을 벗고 익명의 존재가 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누구에게나 '19호실'이 필요하다. 백색 소음이 나는 카페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19호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크고 넓은 집에서 왜 혼자만의 방을 가지는가 했다. '맨 꼭대기의 빈방에 '개인 시간! 방해하지 말 것!'이라고 적힌 마분지가 붙어있었다. 식구들과 파크스 부인은 이곳이 '엄마의 방'이며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300쪽)


 하지만 그 '엄마의 방'은 가족실이 되어버린다.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지성적인 그녀가 왜 문제를 풀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억압과 슬픔, 분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항조차 할 수 없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하는 'Eddie Higgins Trio'와 'Bill Evans Trio'의 재즈 연주곡이 무한 반복이다. 자유로운 즉흥연주가 재즈의 매력이듯 나의 감성도 유연성을 갖는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인 '온종일 외출권'을 알차게 쓰니 내가 강화되고 고양된 기분이다.      


그렇게 힘을 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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