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마스테 Jun 25. 2020

엄마들이 시간이 없는 이유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엄마들이 시간에 크게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24시간 상시 대기 상태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둘째는 등에 업고 첫째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따라다녔다.    떨어진 레고 조각을 주워 맞추기, 아이들이 먹다가 흘린 식탁 주변 정리. 뒤돌아서면 다시 정리. 열이 펄펄 나는 아이 데리고 밤을 지새웠던 나날. 예민한 신경세포를 곤두세우고 몇 년을 보내니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육체적으로는 좀 더 여유로워졌다. 아이들을 아침 식사를 차려줘야 하는 시간. 따뜻한 침대에 그대로 눕고 싶기도 하고 괜히 몸이 더 무거운 것만 같다. 최대한의 마지노선까지 누워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킬 때도 있었다. 식사를 차려 준 후 등교 후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온갖 집안일은 오전 아홉 시가 넘어서 시작이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최대한 내 시간으로 활용하고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경단녀로 지낸지는 오래되었고 내 삶은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다. 드라마 제목, 노래 제목 사람 이름이 목 끝에 걸려서 대화의 흐름이 막히기도 한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것 같고 도태된 것만 같다.

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영어학원도 다니고 운동이나 악기도 배우러 다녔다. 그 시간을 아무개 엄마로 불리며 지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는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느낌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귀중한 시간이다. 공감도 되고 서로 위로도 해 준다


행복과 번뇌의 근원인 아이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이니까 불행하기도 했다. 아이가 도태될까 학부모 반 모임에도 나간다. 내 아이가 혹시라도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어느 학원과 선생님이 좋은지 정보도 주워 담는다. 빈곤한 성적이 빈곤한 미래를 낳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남이 계속되기도 하고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식 자랑과 상처 주는 말들로 뒤섞인 모임은 나의 정신을 쏙 빼놓게 했다.  문직에 종사하는 아이의 엄마와 남루한 전업주부의 나의 지진한 일상과 비교한다.

 

나만의 내면을 키우는 시간으로 만들기에는 늘 부족하다. 주말 부부인 나는 저녁에 잠깐 운동이라도 나가려고 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밤늦게  학습지 몇 장 가지고 매일 씨름하다 보면 감정 소모에 방전된 듯 에너지가 스르르 빠져나간다.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쓴 것만 같아 허기가 진 듯하다. 교육을 조금 더 잘 시켜보겠다고 라이딩했던 시간. 차속에서 아이가 하원 할 때까지 학원 근처에서 기다리며  집착했던 시간. 집에 가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차려야 하는 시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래 더미들. 수시로 울려대는 두 명 아이들의 반 모임 카톡방. 몇 시간 동안 확인을 안 하면 백개의 카톡이 와 있다. 준비물은 내일까지 인데 벌써 밤 열 시가 넘었다. 식탁 앞에는 사인을 받아오라는 가정통신문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엄마의 역할로 주어지는 과다한 몫들이 버거웠다.


첫째 아이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물었다.


"엄마."  "엄마만의 올해 계획이 뭐야?"

"계획? 계획이라고? 글쎄" 하고 얼버무렸다.


 갑자기 멍해졌다.  나의 계획 따윈 내 인생에 없었다.  나의 계획이 아니라 그저 우리 가족의 계획만 있었을 뿐이었다. 내 인생이 영화라면 나는 남이 써준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이지 영화 전반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끌려다니는 삶만 산 것 같았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가르침이 크게 다가왔다. 그저 독서를 하고 싶었다. 시간관리에 서툰 나는 독서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상의 허기를 독서로 채우리라 마음먹은 것은 딸아이의 질문을 받은 즈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