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나는 가끔 당신을 반려하고 싶다 2
겨울 방학 동안 나무늘보에 가까워진 딸아이가 한참을 소파에서 뒹굴다 맥락 없이 훅 들어온 질문이었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물가가 워낙 비싸져서 어찌 됐든 아껴 보자는 마음으로 전국 팔도 저렴한 식자재를 검색해 보고 있던 나는
때마침 무려 8마리 오징어가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후려치는 기이한 상품을 발견하고 초 흥분상태였다.
심지어 국내산 오징어였다. 구매 시간, 앞으로 2분 33초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런 찰나에 결혼 생활 평생 나의 숙제였던 그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아무렇게 대답해 버렸다.
"어??? 아, 잘생겨서!"
"뭐? 엄마, 송중기 좋아하잖아!"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딸이었다. 초 5학년이 되는 딸 머릿속도 나처럼 꽤나 복잡한 듯 보였다. 엄마의 잘생김 기준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진 탓에 도무지 그 간극을 메꾸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 진짜야?"
눈이 동그래져 묻는 딸아이 앞에, 나는 정말 이 순간 저 오징어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뿐.... 이러쿵저러쿵 귀찮아서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런 나를 꽤나 진지하게 바라보며 아이가 또 말했다.
"에잇, 성격도 좀 보고 그러지!"
"아, 그래! 엄마가 다음에 결혼하면 성격도 꼭 볼게!"
"....."
딸아이에게 못한 말이 있다.
어쩌면, 나중에 물가가 안정되고 영덕 오징어 8마리를 구매하지 않아도 될 여유가 있을 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딱 그 한순간이었다.
서른에 가까워도 여전히 신림동 고시촌을 벗어나지 못한 사시 준비생이었던 남편과 나는 연애 7년째였다. 나는 이미 교대를 졸업하고 삼 년짜리 중단기 저축 만기를 앞두고 있는 견실한 직장인이었다.
그해 이상하게도 선이 많이 들어왔다. 고모네 큰 아들인데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등, 모 대기업 사원인데 꼭 교사 며느리를 봐야 한다는 등... 어쨌든 모든 걸 마다하고. 그렇게 연애가 이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고, 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 때라고 할까? 나도 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여전히 구로역에 있던 00 백화점 지하 식당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도 막막했다.
토요일 주말 점심이라 식당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데 두 아이가 자꾸 눈에 보였다. 내 눈에만 보인 게 아니었다. 그 식당가에 있던 사람들도 힐끔거리며 보게 된 아이들.
초 4학년, 초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은 식당 모서리에 서서 밥 먹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5분, 10분... 사긴이 지나도 어른은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서 있기만 했는데 계절에 맞지 않은 옷차림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혹시 배가 고파서 저기 서 있나?'
아마도 그날 그 식당가에 밥을 먹고 있었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괜히 무안한 일이 벌어질까 봐. 혹시 부모님이 근처에 있는데 내 생각이 오지랖이 아닐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지?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우적우적, 맛있게 오므라이스를 먹고 있던 남자 친구(지금은 남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아이 둘에게로 다가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남편에게로 쏠렸다.
남편은 아이들과 한참 이야기하다가 아이 둘을 식당가 메뉴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이어 남편이 아이들 손에 번호표를 쥐여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했어?"
사람들이 우리 둘의 대화에 귀를 쫑긋하는 게 느껴졌다.
"배고프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뭐 먹고 싶냐고 물었지. 라면을 먹겠다고 하길래, 든든하게 밥이 되는 걸로 먹으라고 돈가스 정식 두 개 사줬어! 아, 네 카드 썼어!"
그러고 보니 그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중간에 테이블로 와서 내 지갑을 가지고 가긴 했었다.
"응, 잘했어!"
그날, 나는 이 남자랑 꼭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는 남편의 저 마인드!
그 가오가 인류애적인 마인드라 좋았다.
지금은, 그 인류애가 남아 있는지 의문이지만. 세월은 참 많은 것을 바꿔 놓기도 하기에.
어쩌면 2024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부부는 돈도 없고 가오도 없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이 꼭 일에 성공해서 저때의 가오를 되찾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