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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Jul 01. 2016

알파고(AlphaGo)와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의 장지갑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지 3달여가 지났다. 기계의 위상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다. 과거의 기계는 근육질이고 수동적이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기계는 지적이고 능동적이다. 그저 인간의 불편을 덜어주는 보조자였던 기계가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삶의 주류로 도약했다.

집집마다 알파고를 한 대씩 들여놓은 머지않은 미래를 상상해본다. 알파고는 TV나 노트북처럼 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사는 인간은 병이 났을 때 의사를 찾아가지 않는다. 알파고에게 혈액 한방울을 투여하는 것으로 높은 수준의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농부는 파종시기를 맞추기 위해 달의 모양과 별자리의 위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알파고와 기계 친구들이 때맞춰 파종하고 수확한다. 회사는 많은 업무를 알파고에 위임한다. 정문을 지키던 경비아저씨도 없고 화장실을 청소하던 아주머니도 없어졌다. 인간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바야흐로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다. 인간은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생산 활동에 뛰어들지 않아도 세상은 알파고가 만들어낸 생산품으로 가득하다. 이브가 선악과를 품음으로서 시작된 인간 노동의 시대가 드디어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대신 기계가 일하는 에덴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행복하지 않다. 아담과 이브의 장지갑이 텅비어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만든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재화는 풍부해졌지만 소비는 할 수 없다. 부가가치를 창출한자와 소비하는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의 대가로 지급받은 임금으로 소비하고 다시 소비를 위해 노동을 하던 선순환의 고리가 빠져버렸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나서서 방황하는 아담과 이브에게 돈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기계 들이 과거 인간의 육체활동을 통해 만들어 내던 것 이상으로 생산하고 있으니 공짜로 나눠쓸 수 있도록 하면 될 것 같다. 국내외에서 들끓는 무상시리즈도 이러한 방식의 하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급여 등 노동을 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무노동 무임금의 법칙을 사문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 무용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처음에는 기계의 생산활동을 감독하고 생산물을 나누는 일이라도 하겠지만 후에는 이마저도 기계에게 맡겨버릴 것이다. 모두 무상에 의존해 인간이 해야할 최소한마저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제도가 상당수준 발전한 유럽의 경우에는 이미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하지 않고 개 여러마리를 키우면서 복지급여를 받으며 사는 영국 하층민 문제나 세금이 영업이익의 100%가 넘어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북유럽 국가의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가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전국민이 일정수준이상의 급여를 무상으로 받는 무상복지 정책을 부결시킨 것도 이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알파고가 만들어줄 New에덴동산의 시대에도 노동과 대가를 연결시키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일한 노동량으로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새로운 에덴동산은 인간성을 상실한 그저 물품창고와 같은 모습일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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