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ehyun Kim Aug 31. 2016

삼국지

매력을 높여라

한때 일본 코에이(koei)사가 만든 삼국지 게임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 게임의 특징은 삼국지 인물의 능력을 다섯 가지 지표로 표현한 것이다. 등장인물을 무력, 지력, 정치력, 매력, 통솔력 5가지로 평가해 한눈에 특성을 알 수 있게 해두었다. 플레이어는 이 지표를 참고로 장수들을 모아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


여포는 무력이 100에 가까워서 일기토로는 어느 장수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지력은 20에 불과하다. 적의 계략에 쉽게 넘어 가니 여포만으로는 천하통일이 힘들다.


5가지 지표를 보고 장수가 가진 특징을 찾아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이 게임의 성공 방정식이다.

무력이 높은 자는 힘을 쓰는 자리에  써야한다. 장비는 무력이 높다. 장수들끼리 합을 겨눌 때는 장비를 출전시키면 이길 확률이 높다. 통솔력이 높은 자는 부대를 이끄는 선봉장으로 쓰면 좋다. 관우는 통솔력이 높은데 공성전으로 이어지는 전투도 병사들을 잘 다독거려 곧잘 이긴다. 제갈공명이나 주유와 같은 지략가는 지력이 높으므로 군사로 기용해야 한다. 군주에게 좋은 제언을 하기도 하고 전투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또한 정치력이 높은 순욱과 같은자는 내정을 맡기거나 인재 탐색에 사용하면 유용하다. 게임이 후반부로 접어들어 많은 도시를 직접 관리하기 힘들 때 일임을 맡길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애매하면서 유용한 능력이 매력이다. 천하삼분지계의 한축을 담당했다는 삼국지의 주인공이자 촉나라의 유비는 점수로만 보자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력은 관우나 장비에 비해 턱없이 낮고, 지력, 정치력, 통솔력은 제갈량에 비해 한참 아래다. 하지만 유비는 매력이 높다. 매력이 높은 유비에게는 인재가 모여든다. 유비의 인간적 매력구름처럼 인재를 끌이고, 사소한 계략에도 적진은 혼란에 빠지고 주변국이 스스로 항복한다. . 이는 천리마의 빠름, 청룡도의 단단함, 수천 권의 책에서 배운 비법과 비견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가진 지식을 보여주기도 전에 행여 다른 사람이 그 기회를 낚아채지나 않을지 걱정하지 않는다. 또 강요하지 않는다. 억지로 내게 와서 당신들의 고민을 털어내 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각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의견을 내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뿐이다.


나는 매력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매력은 단기간의 학습이나 처세로 높일 수 없다. 무엇인가 오묘한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약간 다른 차원의 그것이다. 지금부터 '시작!'을 외치고서 매력을 높이겠다고 덤벼들어도 불가능하다. 좋은 사람에게는 꽃내가 난다. 그것은 페브리즈와 같은 인스턴트 방향제의 냄새와는 차원이 다르다. 죽임이 아닌 살림의 향기다. 그래서 그 향기는 함께 같이 있고 싶은 것이다.  


혹여 조조는 매력과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조조에게도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조조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조조는 누구 못지않은 지력을 가졌지만 사마의, 곽가, 순욱, 순유, 서서, 가후 등 훌륭한 책사들을 거느렸다. 조인, 조홍, 하후돈, 하후연,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 등 훌륭한 장수도 여럿 있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후 "곽가가 있었으면 나를 이토록 참패하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통곡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는 일화와 공을 들였던 관우가 유비의 품으로 되돌아 가려할 때 비단으로 지은 전포(戰袍) 한 벌을 전하면서 “천하의 의사(義士)를 내 복이 적어 붙잡아 두지 못하는구려”하며 거듭 애석해하는 장면은 유비 못지않은 조조의 인간적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한여름을 지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다. 매력적으로 서늘한 가을날 밤이다. 문득 이 가을밤에 질투가 난다. 나는 기껏 글로 "나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구차하게 말하고 있는데 가을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워 보인다. 그래도 매력 축적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왕도나 모범답안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런 노력도 영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여 이 글을 읽고 백치미나 엉뚱함에서 매력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톱 밑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