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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Aug 31. 2016

위험회피자만 가득한 세상

용감한 젊은이를 찾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나는 용감한 편인가 겁이 많은 편인가? 위험을 과감하게 취하는 편인가 위험은 가급적 회피하려는 편인가? 쉬워 보이는 이 질문에 답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


최근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펀드 하나쯤 가입해본 사람이라면, 투자자 성향 분석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봤을 것이다. 괴상한 질문 몇 개에 답하고 나면 이내 컴퓨터로 나의 투자성향을 알려주고 이에 근거하여 가입하고자 하는 펀드가 나에게 맞는지를 점검해준다. 나는 적극 투자형이었다. 아마도 수익을 위해 과감히 위험을 취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인 걸까?


비록 적극 투자형이라는 감투를 받은 나이지만, 카페 옆자리에 앉은 생면부지의 사람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이기면 1억을 받고, 지면 1억을 주는 게임에는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평균과 기댓값이라는 것을 배웠다. 가위바위보에서 이 길 확률과 질 확률은 50%씩이고 각각의 보수(payoff)는 1억 원과 -1억 원이기 때문에 기댓값은 0원이다.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어느 쪽으로도 0원이다. 즉 게임을 하건 안하건 기댓값이 같은 이게임에 적극 투자형인 내가 참여하지 않다니 다소 이상하다. 나는 오히려 위험 중립적이기보다 위험 회피적인 것 같다.


요 며칠 밥을 든든하게 먹고 잤더니 어젯밤에는 돼지꿈을 꾸었다. 복슬복슬한 분홍색 돼지가 덜컥 내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 내입에 함구령을 내리고는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1등 당첨금 5억의 로또 복권을 샀다. 어젯밤 돼지꿈을 꿨다면 1등 당첨금이 20억이나 되는 복권을 샀다.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길가다가 벼락 맞을 정도로 낮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로 낮은지 보여주기 위해 수학적인 지식을 동원해 보면, 45개의 번호 중에서 6개를 골라내는 경우의 수는 8,145,060이고, 이 중 1개의 조합만이 1등이 되는 것이니 그 확률은 0.0000123%다.

로또 1등 번호의 경우의 수


매우 매우 낮다. 기댓값은 거의 없다. 복권을 사는 것은 거의 돈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돼지꿈이라는 미신에 기대어 복권을 샀다. 투자금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위험은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이제야 나에게 씌워진 적극 투자형이라는 감투가 빛이 나는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이런 행동에 수긍할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을까? 이미 눈치챘겠지만 금액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가위 바위 보 게임의 판돈이 천 원 정도였다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참가했을 수도 있다. 로또 복권 한 장을 사는데 드는 비용이 천만 원 정도였다면 아무리 훌륭한 돼지꿈을 꾸었더라도 복권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큰 위험에는 위험회피적 성향을 보이면서 작은 위험에는 위험선호적이 된다. 그것은 감당해야 할 손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비교적 이루어놓은 것들이 많고 재산이 축적된 노년층은 감당해야할 손실이 크기 때문에 위험회피적 성향을 띠게 된다. 반대로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청장년층 들은 손실의 크기가 제한적이므로 위험선호적 경향을 띤다.


건강한 사회는 젊은이들이 꿈을 좇아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일을 벌이고 이따금씩 그것이 크게 성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사회다. 그들은 활력을 불어넣고 생기 돌게 한다.


스티브잡스는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대학을 자퇴하고 친구들과 창고에서 컴퓨터 회사를 차렸다. 카카오톡 개발자인 이제범 씨는 수십 번의 실패 후에 카카오톡이라는 국민앱을 만들었다. 광고 천제 이제석 씨는 달랑 5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날아가 노숙을 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이들은 하나같이 평균적인 수준의 위험이 낮은 안정적인 일 대신 실패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일을 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런 도전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젊은 사람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한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꿈이어야 할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은 의대나 약대를 가는 것이 지상 과제다.


위험은 위험하다. 그러나 아무도 위험을 취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위험 뒤의 큰 성공도 기대할 수없다. 그렇다고 기성세대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젊은 사람들에게만 위험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위험을 취하고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미국처럼 잘 만들어진 파산법을 도입해 실패시 입을 수 있는 손실을 제한해야 한다. 실패한 사람에게 주홍글씨를 세기고 이들이 다시는 사회 전면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선의의 실패자인 젊은이들이 끊임 없이 재도전하고 성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창업펀드 등으로 위험을 나누어지고, 정부가 제도적으로 위험을 덜어주어 위험을 과감하게 취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야 우리나라의 미래도 잃어버린 30년 증후군을 겪고 있는 일본을 답습하지 않고 발전하는 활기찬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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