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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Oct 29. 2016

흰색 종이의 추억

그 많던 흰색 종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들은 술에 취해 들어오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바깥사람으로 분류되었기에 가족들에게는 무뚝뚝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들이 나빠서였거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의무를 지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존재였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올 때면 무심한 듯 뭔가 하나 툭 던져주곤 했는데, 때로는 통닭이었고 어떤 때는 로보트 장난감이었다. 닭다리가 한 개쯤 없고, 다소 조잡해 변신이 잘 안되었지만 거기에는 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최대한의 애정표현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술취함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흰색 A4용지 한 묶음을 안겨주셨다. 아버지의 선물은 아주 특별했다. 나는 그 새하얌에 눈이 시릴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그토록 하얀색의 종이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A4용지의 새하얌에는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그 새하얌에 최대한 예의 있게 행동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선 책상에 앉아 표지가 예쁜 책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흰 종이에 베껴 썼다.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이 내는 오묘한 사각거림을 즐기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하얀 종이에 요령껏 자리 잡은 흑색의 글자들의 아름다움과, 잘 깎은 연필이 내는 사각거림의 경쾌함은 실로 대단했다. 베껴 쓴 책은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우화 중 하나였는데, 결코 소설의 내용이 좋았다거나, 글체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로지 중간중간 그려진 그림이 예뻤기 때문에 그 책을 선택했고, 흑연심이 뭉개지면서 내는 소리가 좋아 처음부터 끝까지 적었다.


이 필사가 나의 첫 번째 글쓰기다. 그때 느낀 재미가 나를 글씀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후에도 글을 쓸 때는 연필을 꼼꼼하게 골랐다. 손으로 깎아야 하는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볼펜이나 샤프펜슬보다는 연필을 주로 사용했다. 연필이 내는 소리가 좋았고, 아무리 좋은 지우개로 지워내도 약간 거무룩하게 남는 자국도 좋았다. 타의에 의해 지워졌지만 여기 있었다는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연필의 거만함이 거기있었다. 물론 이제는 대부분의 글을 연필이 아니라 컴퓨터로 쓰지만 재미의 요소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음악을 연주하듯 타각 타각 두드려지는 키보드의 경쾌함은 즐거운 글쓰기의 세계로 훌륭하게 이끌어주기에 이제는 연필대신 키보드를 꼼꼼히 고른다.


나는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을 글로 적는다.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어주면 좋겠지만 꼭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서 쓰지는 않는다. 글의 가장 주된 독자는 자신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쓴 글을 그만큼 열심히 읽어주지 않는다.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면 그때의 그 감정이 되살아 난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덤으로 더해진다.


글 밖의 나는 글 속의 나를 관찰하고, 동정하고, 때로는 동경한다. 것이 글 씀의 재미다. 작가 중에는 글을 쓰는 것은 산고의 고통과 같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서야 어디 글을 쓰겠는가. 직으로 글을 쓰고 글씀에 계가 달린 일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글쓰기란 생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 그 정도의 사치는 부려도 되지 않을까?


무슨 일이든 재미가 필요하다.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감정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계속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가 사 오신 새하얀 A4용지를 채워나가는 그 기쁨을 떠올리며 하얀 공간을 채워나간다. 고즈넉한 밤 시간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타각 타각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새하얀 화면을 채워나가는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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