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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Dec 08. 2016

관계의 깊이

이기적인 기억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룸메이트였던 대학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했다. 게다가 멋진 직장으로 이직까지 했단다. 내 기억에 그는 공부를 잘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똑똑했다. 우리는 제법 잘 맞았고 몇 가지 프로젝트를 같이하며 친해졌다. 


'짜식 봐라. 연락을 안 하네.'

'바빠서 잊었겠지...'

'그래도 다음 달에 한다는 결혼을 아직 안 알린 건 좀 너무한데...'


짧은 망설임을 뻥하고 걷어차 내고 문자를 보냈다.


'결혼한다며 축하해'


돌아오는 답변은 미적지근했다.

결혼식에 와달라거나, 연락을 먼저 못해서 미안하다거나, 심지어 결혼식이 언제라는 말도 없었다. 친한 친구에게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까먹은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마무리도 제대로 못한 체 서둘러 대화를 얼버무려 끝내고 말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의 공간에 있었다. 같은 시공간에서 추억이라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 속에 남은 모습은 달랐다. 내 그림 속의 우리는 아주 가까이 많은 것을 공유하는 모습인데, 그의 그림 속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멀뚱멀뚱 서있을 뿐이다. 


기억은 이기적이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슬그머니 뒤편에 제쳐둔다. 내 것이 아닌 듯 버려진 기억으로 과거는 왜곡된다.

 

이제야 생각난다. 수없이 부딪혔던 갈등과 아팠던 상처들이 '나도 여기 있었어요' 하면서 나타난다.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추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시나 반갑게 건넨 인사에도 그들이 나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나.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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