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왔던 육아의 모습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머리를 쥐여 뜯으며
내가 십 대 소녀였을 때 갑자기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그림책 작가에 꽂혔었다. 동화책 작가인 그분의 그림이 너무나 섬세하고 내용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작가가 상당히 화제가 되어서 서점 곳곳에 그분의 책이 있어서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내가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 그 사람의 그림책을 차마 사서 둘 생각은 못했기에 친구들 생일 선물로 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신인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친구들아 미안. 어쨌든 나는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을 친구들에게 안겨 준 것 같다. 선물 주기 전까지 집에서 몇 번이나 읽으면서.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동화책을 정말 많이 사주고 나도 함께 읽을 거야.'
바로 오늘 나는 십대의 내가 했던 약속과 정반대 되는 행동을 했다.
아이가 꽤 늦은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아 억지로 침대까지 끌고는 갔는데 잠이 들기가 싫었는지 아니면 졸려서 짜증이 난 건지 계속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평소에는 아이와 함께 책을 가지러 가서 함께 자는 안방으로 와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오늘은 조금이라도 빨리 재우려는 생각으로 내가 책을 골라와 읽어주었다.
"엄마가 한 번 읽어주면 듣고 자는 거다?"
"응~"
이렇게 순순히 동의했던 아이는 책을 다 읽어 주자마자 다른 책을 보고 싶다고 징징거렸다. 여기서 한 번 화가 났다. 아까 분명히 나랑 약속했는데 다 까먹은 거니? 그리고 혼자라도 책을 고르러 가겠다던 아이가 무서웠는지 같이 가겠다고 또 떼를 써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아이방에 가서는 책을 골라 다시 침대로 왔다. 이번에는 참 두꺼운 책을 골랐다. 7가지가 넘는 공주 동화를 모아둔 책인데 나는 또 의미 없는 약속을 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뮬란,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여기서 뭐 읽을 거야?"
"인어공주"
"그럼 인어공주만 읽고 자는 거다?"
"응~"
"약속~"
그렇게 의미 없는 약속을 하고 인어공주를 참을성 있게 나름 목소리 변조까지 해서 읽어줬는데 끝나자마자 아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백설공주 읽고 싶어~"
"아까 하나만 읽고 자기로 했잖아."
"아니야, 백설 공주도 읽고 싶어~"
하아... 딥빡... 난 또 성질을 참지 못하고 방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아이는 울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졸려서 나한테 더 짜증을 냈나 보다. 십 대 소녀시절 로망이었던 책 읽기가 이런 시간이 될 줄 나는 몰랐다. 그때 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이래저래 Dreams come true다. 그 모양은 예상을 완전 빗나갔지만.
현실 육아는 험난하고 고되다.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