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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전재산을 준다고 했다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사랑

by 서이담
2021-05-31.JPG 우리 부부가 점찍어둔... 그래 점만 찍어둔 볼보의 V60CC

우리 차는 문짝이 두 개 밖에 없는 소형차다. 몇 년 전 미루지 말고 지금 타고 싶은 차를 타자고, 앞좌석을 제치고 아이를 태우면 된다며 호기롭게 중고차로 구매했었다. 아이가 작고 가벼웠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점점 아이가 무거워지고 또 이제는 내가 아이를 등 하원 하게 되면서 힘에 부치게 되니 자연스레 차를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 차를 구입할 때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중형차를 하나 더 사서 두 대를 굴리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차를 정작 바꿔야 할까 고민을 해보니 차를 두 대 굴리는 데는 많은 유지비가 들었다. 그래서 있던 차를 처분하고 차를 바꾸는 게 어떨까 생각했는데 여기서 남편과 나의 생각이 엇갈렸다. 나는 실용적이고 저렴하지만 좀 큰 차를 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은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했다. 나도 더 좋은 차를 타고는 싶었다. 하지만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시점에 너무 비싼 차를 사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반대를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남편의 사촌 형님이 새 차를 몰고 등장했다. 테슬라 모델 Y를!

2021-05-31-2.JPG 사촌 형님네 차 테슬라 모델 Y, 실제로 보면 꽤 크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집에 충전 시설도 없는데 너무 빨리 산 거 아니냐?"


"집에 빚도 있는데 또 차를 샀냐?"


대부분 사촌 형님네를 걱정하는 이야기였다. 형님네 부부는 원래 문 네 개짜리 소형차를 몰고 계셨는데 그 차도 팔지 않고 새 차를 구입했다고 했다. 남편은 새 차를 샀다는 사실 자체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신기했다. 그 집은 맞벌이도 아닌 외벌이인 데다가 최근에 집 장만을 하느라 빚도 많이 졌을 텐데 새 차라니! 한동안 이 부부의 '지름'에 대해 남편 일가친척들 모두가 술렁댔다. 만나기만 하면 차 이야기를 했다. 한편으로 나는 저렇게 할 수 있는 형님네가 부럽기도 했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저런 선택은 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은 사촌 형이 자기 돈으로 차를 사진 않았을 거라고, 아마 부동산을 하셔서 돈을 꽤 잘 버시는 큰 이모가 아들 내외에게 차 사라고 돈을 보태 줬을 거라고 내게 몰래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형님도 차암. 정말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네요 어머님. 아들 하나만 있는 저는 어떡해요. 흑흑"


나는 이렇게 농담을 하며 웃고 말았다. 어머님 당신도 큰아들인 남편에게 이것저것 더 해주고 싶을 텐데 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가며 넘겨버렸다.



어느 날 남편에게 들뜬 말투로 이런 문자가 왔다.


"오 엄마가 흥미로운 제안을 하셨어!"


"뭔데요?"


"응. 잠시만~!"


남편은 어머님 문자를 캡처해서 보여주셨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재민아, 우리가 이번에 임대 아파트로 오면서 서울 빌라 집 보증금을 뺐는데 그걸 너희한테 빌려주고 너희가 차를 바꾸면 어떨까? 아무래도 너희 차도 좁고, 지금 타는 너희 차는 동생에게 물려주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그 보증금, 그 돈은 어머님의 전재산이었다.


눈물이 났다.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어머님이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는 우리 부부에게 전재산을 주신다고 하셨다. 정작 당신네들은 차가 없는데 말이다. 빌려주신다는 말로 하시긴 했지만 어떠한 담보나 갚을 일자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결국 주는 거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나는 절대 그런 부모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절대 안 된다며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 돈을 받는 건 불효를 하는 거라고, 어머님께 받지 않겠다고 부드럽게 잘 거절하라고 했다. 그 돈을 받진 않았지만 몇 배 이상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차를 사네 마네 고민했던 내가 참 옹졸해 보였다.


부모의 큰 사랑 앞에서 나는 참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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