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 간다
"이번 주말에 엄마 혼자 있는데 놀러 올래?"
지난 금요일 저녁 엄마가 집에 혼자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가 가꾼 텃밭 구경도 할 겸 엄마 바깥바람도 쐬어 드릴 겸 겸사겸사 친정집에 내려가기로 했다. 엄마가 장난감을 사두었다는 이야기 덕분에 아이도 신이 나서 길을 나섰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 금세 시골집에 도착했고 새 장난감을 갖게 돼 신난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너무 편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친정집에서는 잠이 그렇게 잘 온다.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잔 사람처럼 그렇게 밤잠도 쿨쿨 잤다. 다음 날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아이가 과자 몇 개를 먹길래 나도 남는 부스러기를 먹었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 점심 외식 계획을 급 변경하고 또 엄마가 해 준 점심밥을 먹고 잠을 청했다.
앗! 그런데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겼다. 아빠가 너무나 빨리 집에 돌아오신 거였다. 몸이 안 좋아서 급히 돌아오셨다고 했는데 아빠가 외출을 그리 좋아하시지 않아서 엄마 콧바람 쐬어 드리자는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엄마가 우리 때문에 밥 차리고 아이 돌보느라 더 힘드시진 않았나 뒤늦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딸은 예쁜 도둑이라 하지 않았던가.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는 저녁까지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혼자되었을 때가 딱 내 나이 정도 되었으려나.'
우리 엄마는 내가 7살쯤 되었을 무렵 나의 친아빠와 사별하셨다. 내가 어리지도 성숙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 나는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씩 엄마가 보던 시집에 외로움이나 힘듦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던 것들을 우연히 발견하곤 했는데 '아,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하네?'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리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 서른셋, 엄마가 남편을 잃었을 시점의 나이라는 걸 알게 되자 엄마의 외로움과 힘듦이 조금은 체감되었다. 돌아가신 아빠 때문일까. 나는 남편이 가끔 사라지는 상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척 괴롭다. 상상 끝에는 꼭 남편이 나보다 나중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내 인생에서 남편의 자리가 그만큼 큰 거라는 결론이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남편 없는 여성의 삶은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나를 데리고 금요일마다 교회를 가 그렇게 오래도록 기도했으리라.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나를 홀로 키우다가 지금의 아빠와 재혼하셨다. 아빠가 조금 손이 많이 가시는 분이긴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엄마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 이제는 안다. 어제 집에 오는 길 아빠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엄마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두 분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한다.
아빠에게 이런 마음을 담아 문자를 할까 하다가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다음 생일로 미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