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서 행복해요
예전에는 내 오지랖을 촌스럽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지랖이 사람에 대한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임을 알았다. 예전에는 내 감정의 진폭이 커서 괴로웠고, 그렇게 괴로워하는 내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큰 감정폭 때문에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이렇게 마주쳤던 소소한 이야기와 사람들을 나눠보려고 한다.
여느때처럼 출근을 하고 컴퓨터 전원을 켠 뒤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출근을 조금 일찍 하는 편이기 때문에 늘 화장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 마주치는데 처음엔 가벼운 인사만 나누다가 요즘은 "사무실이 좀 덥다."와 같은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운동을 하는 걸 보신 아주머니가 본인의 며느리가 2세를 준비한다고 살을 10킬로가 넘게 빼서 많이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서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그 며느리가 우리 둘째 아들 와이프인데. 말도마요. 내가 첫 아이 아홉살 때 둘째를 가져가지고, 남편이 너무 나이 터울이 커서 내가 힘들거라고. 글쎄 그 당시에 백만원을 가져와서 나를 주더라고. 애를 지우라고. 그래가지고서는 내가 그 돈을 가지고 첫째를 데리고 나가서 그 돈을 다 쓰고 왔어요. 그리고 둘째를 낳았지. 지금은 그 둘째가 나를 살뜰히 챙기고 효자 노릇을 해요."
평소 같았으면 '별 얘기를 다 하시네.' 하며 넘겼을 말이었다. 그 날따라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남편이 툭 "아이 지우고 와" 하면서 한 달 월급 정도 되었을 법한 큰 돈을 전해주는 장면, 그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하나?' 하며 오래토록 고민하는 아주머니의 모습, 그리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평소에는 돈을 아끼느라 가보지 못했던 백화점도 가보고 사주지 못했던 음식도 사주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돈을 다 쓰고 돌아가면 남편이 아이 지우라는 소리를 기가 막혀서 이제 더이상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습도 상상이 갔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삶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오늘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내 글 중에서 유독 할머니 인터뷰를 담은 글 반응이 좋아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런 얘길 해주셨다.
"이담아. 엄마가 할머니랑 외식을 하러 가잖아? 그러면 서빙을 하는 사람들이 딱 두 갈래로 나뉘어. 부모님이 멀쩡히 계신 분이랑 그렇지 않은 분. 그건 할머니를 서빙하는 분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어. 할머니한테 알뜰살뜰하게 이것 한 번 드셔보시라고, 모자르시면 더 달라고 각별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 그분들이 보통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니면 요양병원같은 곳에 멀리 계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셔서 하지 못하는 효도를 할머니한테 하고 싶어 하시더라고."
엄마 이야기를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구나. 그래서 내가 썼던 글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었겠구나.' 같은 이유로 식당에서 그 직원은 나의 할머니에게 가족에게 주는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 이야기다. 나도 매일 매일 다른 이야기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어떤 이야기들은 슬프고, 어떤 이야기들은 영롱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엉뚱하며, 어떤 이야기들은 천진하다. 가끔 모나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만나면 뒷걸음질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귀를 기울여 볼 만한 것들이다.
내가 작가여서 참 감사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또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