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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분수쇼를 봤다.

급하다 급해! 마렵다 마려워!

by 서이담
rashana-grant-ZVJ6abkQ9Po-unsplash.jpg Photo by Rashana Grant on Unsplash

"엄마 나 급해! 급해 급해! 쉬 마려워!!'


"어어? 아까 화장실 안 다녀왔어?"


"엄마 쉬... 쉬 나올거같애!!!"


여긴 어디? 회사 앞 삼거리, 좌회전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차 안이다.

나는 누구? 쉬 마려운 아이의 엄마이자, 곧 좌회전을 해야 하는 운전자다. 심지어 차 안에는 나랑 아이뿐, 아무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급한 대로 빈 통에 쉬를 하라고 해야겠다.


시어머님이 비상시에 사용하라고 차 한구석에 넣어두신 통 생각이 났다. 얼른 아이에게 통을 대주고 쉬를 하라고 했다. 운전자가 뒷좌석에 카시트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통을 대주는 일이란 난이도 높은 곡예와 같다. 그런데도 난 그걸 해내고 있다.


쉬를 막 시작했을 때. 띠리리. 초록색 화살표가 떴다. 좌회전하란다. 으악... 내 뒤에는 차가 왜 이리 많은 거야. 에잇 어쩔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통을 내 자리로 가지고 왔다.


"엄마!!! 쉬 나온다고!!!"


"응 알어..."


아이의 쉬야 물줄기가 온 사방에 튀긴다. 날린다. 운전하고 있는 내 손과 팔은 물론 차 곳곳에 솨아 하고 퍼진다. 내 아이의 쉬는 따뜻하구나. 하하하하하. 분수쇼를 보고 있구나 내가. 하하하하하하.


좌회전 한 뒤 차를 갓길에 멈추고 비상시를 대비해 차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아이 옷을 꺼내어 갈아 입혔다. 차에 있는 분수쇼의 흔적도 일단 물티슈로 대강 처리했다. 물론 내 손과 팔에 묻은 그것들도.


카시트가 너무 젖어있어 아이가 앉기 싫어할 것 같아 오늘은 특별히 아이를 앞좌석에 태워서 집으로 왔다. 아이는 언제 쉬를 했냐는 듯 싱글벙글이다. 앞좌석에 타는 게 그리도 좋았나 보다. 집에 도착하니 진이 다 빠진다. 다행히 오늘은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서 남편에게 비닐봉지를 들고 와 달라고 해 같이 뒤처리를 했다. 아이가 떼를 쓰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은 최악의 퇴근길이 되었으리라.


그래도 뭐 누구도 안 다쳤고 아무것도 안 망가졌으니 됐다.

빨면 되고, 씻으면 된다.

처녀 때는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생각이다. 진짜 엄마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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