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은 아이에게도 버겁다
코로나 초기, 회사에서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재택 권한(?)을 주었다. 그때 아이는 지금보다 한 살 더 어리기도 했고, 회사에서 재택이 아직 자리잡지 않은 상황이라 이래 저래 간섭과 감시의 눈초리가 있었다. 그때 나는 재택을 포기했다. 아이와 함께 근무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는 일하고 있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계속 떼를 쓰며 놀아달라고 했다. 결국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친정과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제 아이와 절대 함께 일하지 않으리라. 어떻게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 두고 재택근무를 하리라."
벌써 1년이 지났다. 하루는 회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아이가 둘 있는 엄마였는데 재택을 하냐는 내 질문에 뜻밖에도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남편과 번갈아가며 아이 둘을 재택 하며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충격이었다. 아이 하나도 힘든데, 둘을 보살피며 근무를 한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코로나 4단계로 회사에서 다시 재택근무를 권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내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킨 후 집에 돌아오면 근무 시작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고, 그렇다고 갖은 꼼수를 쓰기에는 내 손이 너무 느렸다. 좀 힘들겠지만 두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있고, 이번 주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으니 한 번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재민아, 내일 엄마랑 집에 있을래? 아니면 어린이집에 갈래?"
"집에 있을래~"
"근데 엄마가 내일 집에서 일을 해야 해서 재민이가 방해하면 안 돼. 그래줄 수 있겠어?"
"응!"
자신감에 차서 아이가 대답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재택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다음날, 다행히도 아이가 늦잠을 자서 아침에 많은 일들을 몰아서 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 잠깐 집 앞에 나가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돌아와서 씻고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드디어 아이의 투정이 시작됐다.
"엄마, 일 그만해애애~~ 나랑 놀아~~"
"엄마가 일을 하는 거 방해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그랬지?"
"응"
"그러면 내일 어린이집에 가서 노는 건 어때?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잖아!"
"싫어."
"어떤 게 싫어?"
"음..."
"친구들이 싫어?"
"아니~"
"선생님이 싫어?"
"아니~"
"밥이 맛이 없어?"
"아니야. 뭐가 싫은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집에 있는 게 좋아."
아이의 말을 듣는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회사가 싫듯 아이도 어린이집이 싫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회생활을 잘하던 못하던 그 자체로 모종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심심하더라도 집에 있는 편을 택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마치 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도 회사 가기 싫잖아. 나도 딱 그 마음이야'
우리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