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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배운 입맛

호박잎 쌈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음식

by 서이담
story7_3_1.jpg 출처: http://www.lampcook.com
그게 뭐더라?


어릴 적 먹어보지 않았다면 먹기 쉽지 않은 음식들이 있다. 그런 음식들의 특징은 어릴 때는 그다지 맛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기억 속 저 편에서 꿈틀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내게는 쌈밥이 그렇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엄마는 나를 데리고 종종 백화점에 가셨다. 백화점 7층에 문화센터가 있어서 거기에서 내게 발레나 단소 등을 가르치셨는데 수업을 마치면 대부분 지하 1층 식품코너에 가서 쌈밥 세트를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건 쌈 초밥이라고 해야 하나, 쌈 김밥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지금 우리가 쌈밥집에 가서 먹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찐 양배추 한 장을 적당히 잘라 밥과 쌈장을 넣고 돌돌 말아서 만든 쌈밥과 찐 호박잎으로 말아서 만든 쌈밥 같은 것들이 두 줄로 가지런히 놓여 랩으로 포장된 세트였는데 우리는 그걸 포장해가지 않고 자리에서 먹고 갔다. 자리에서 먹으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 얇게 썬 것이 들어간 진한 된장국을 준다는 거였다. 그것도 일본식 미소 된장국이 아닌 한국식 된장을! 조그마한 뚝배기에 담아서 보글보글 끓여 주었는데 포장된 지 좀 되어 차가워진 쌈밥 세트와 그 따뜻한 된장국을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다.


엄마~! 집에 호박잎 좀 있어요?

이번 주에는 어쩐 일인지 라디오에서까지 쌈밥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집 앞쪽 작은 텃밭에 호박이 자라고 있던 게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연락을 했더니 호박잎이 있단다! 오예! 주말에 바로 엄마 집으로 갔다. 어스름한 저녁 엄마가 연한 잎으로만 골라 뜯어온 호박잎을 식초 물에 흔들어 씻었다. 넉넉한 냄비에 실리콘 찜 판을 올리고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린 뒤 호박잎에서 물기를 착착 뿌려 얹어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호박잎을 살포시 건져 그릇에 놓아주었다. 그날은 또 기가 막히게 전복이 밥상에 올랐다. 우리가 오기 하루 전에 아빠 친구가 보냈다고 한다. 럭-키~!


호박잎 쌈을 한 손 가득 아니 넘치게 올린 뒤, 밥 조금, 쌈장 조금 올려 돌돌 말아먹어보았다. 찌기 전에는 까슬까슬했던 호박잎 털이 이제는 보드라운 식감이 되었다. 그리고 전복을 올려서도 먹어보았다. 꿀맛이다. 김장김치가 끝물이라 살짝 묵은지가 될랑 말랑한 김치 한 조각을 넣어 먹었더니 전복의 비릿함을 잡아주어 더 맛있다.


크~ 이 맛에 쌈밥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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