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한 기억력
아싸! 오늘은 좋은 자리 비어있다!
평소처럼 회사에서 나와 차를 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건물과 가까운 쪽 주차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한 번도 비어 있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 대면 타고 내리기가 수월해서 모두가 선호하는 자리인 탓이다. 나는 차를 익숙하게 대고 나와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를 태우려고 차 문을 열었다. 별생각 없이 문을 툭 하고 열고 아이를 태우기 위해 조금 더 열었는데
내 차 문이 옆 차 문짝에 꽤 세게 닿았다.
"엄마 왜 문이 쿵 했어요?"
아이도 쿵 소리를 들었는지 내게 물었다. 식은땀이 났다. 우선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나서 옆 차 문짝을 살펴보았다. 작게 흠집이 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비비면 없어지는 스크래치인가 싶어 손으로 문대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차에서 물티슈를 꺼내 닦아 봤지만 닦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에 쌓인 먼지가 치워져 스크래치가 더 두드러져 보일 뿐이었다. 너무 당황했다. 순간 그냥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내 이성을 찾았다. 그리고 일단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다.
남편은 일단 차주에게 문자로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차 앞쪽에 차주의 핸드폰 번호가 있었다. 문자를 일단 쳐 보았다.
11가 1234 차주님, 안녕하세요. 제가 실수로 문을 열다가 차주님 문짝에 작게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시고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남편한테 문자 내용을 보내고 오케이를 받은 뒤 전송 문자를 눌렀다. 스크래치 사진을 찍어 사진도 같이 전송했다.
두근두근 했다.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걱정도 되었지만, 혹시 이상한 사람이 걸려서 엄청나게 덤터기를 씌울 수도 있는 거라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남편은 그래도 정직하게 이렇게 미리 이야기를 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운전을 잘해서 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다.
"아 예~ 제 차에 스크래치가 났다고요?"
"네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문을 열다가 문짝이 닿아서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수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다행히 차주는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아 보였다.
"조심하셨어야지.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사진 보니 그리 심한 거 같진 않으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십 년 감수한 느낌이었다. 마음씨 좋은 차주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로 소식을 알리고 집에 도착했다.
오늘 마음고생 많이 했죠? 얼마나 떨렸을까?
집에 와 저녁을 먹고 난 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 3초간 멍하니 있었다. 내가 무슨 마음고생을 했더라?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러고 나서 생각이 났다. 아 맞다. 나 방금까지 남의 차 긁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었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커 보였던 일이 이제 왜 그랬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구나.
신기하다. 상대방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렇게 불안했던 마음이 몇 시간 뒤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순식간에 흐릿해지다니.
기억이라는 게 참 간사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