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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엄마의 3원칙

공손하지만 만만하지는 않게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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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우리 집은 지금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빌라에 살았다. 막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 어느 정도까지 아이는 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많이 뛰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아무래도 어른만큼의 조심성을 가지진 못한 아이인지라 어느 정도 소음은 계속 발생했다. 신기하게도 아랫집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한 번씩 아이가 조금 뛰어서 미안하다고 집에 찾아갔는데도 아랫집은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운이 좋게도 아랫집 사람이 집을 자주 비웠다. 우리가 분기별로 한 번꼴로 미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과일을 전달하러 갔을 때 대부분 아무 대답이 없어 과일 봉지를 걸어두곤 했으니까. 또 아이가 작고 가벼워서 우리 생각보다 소리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든 그때 우리 가족은 운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윗집이에요~


이사를 온 후 빌라보다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훨씬 잘 들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짐을 풀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아랫집에 인사를 갔다. 아이가 혹시 시끄러울 수 있어 죄송하다고 빠른 시일 내로 매트 시공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공손하게 마치고는 과일 한 바구니를 사다 드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매트 시공 날짜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는데 아랫집에서는 인터폰을 했다.


"거 좀 조용히 해 줄 수 없습니까?"


"아니 여기 요양하려고 왔는데 이렇게 뛰면 어떡합니까?"


인터폰을 받은 후 발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아이를 거의 안아서 키우다시피 했다. 빌라에서 큰 불편 없이 살았던지라 이런 생활이 익숙지 않았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짜증 섞인 말과 훈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다. 아랫집 이웃은 밤이고 낮이고 몇 번이나 우리에게 인터폰을 해댔고, 가끔은 찾아와 벨을 누르기도 했다. 매트 시공이 얼른 되기를 기다를 기다리며 그들에게 연신 사과를 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아저씨, 이거 하면 정말 괜찮은 거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두꺼운 매트를 거실 전체와 복도 그리고 아이방까지 잇는 공사를 마쳤다. 거의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공사하시는 아저씨께서는 이 정도 두께면 저렇게 작은 아이가 아무리 뛰어도 아랫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안도감이 생겼다.


아랫집에 다시 들러 매트 시공을 다 했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과일 한 박스를 사들고 가 인사를 했다. 혹시 의심되시면 와서 보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랫집 아저씨는 볼 생각은 없었는지 그저 알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밤, 아랫집 이웃이 또 찾아왔다. 매트 때문에 아이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아랫집은 신경이 쓰여서 죽겠다고 했다. 우리가 들었던 소음은 거의 없었던지라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매트가 흡음을 해도 약간 울리는 소음 정도는 들릴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또 아파트 구조상 우리 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나는 소음도 벽을 타고 아래층으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층간소음분쟁위원회 등 여러 가지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층간소음 사례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조심하고 또 이웃집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좀 더 확실한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 1. 환경을 바꿔 원인을 최대한 차단한다.

우선 아랫집의 피해 상황에 대해 공감을 하는 편이 대응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생각해보면 아랫집은 아이도 없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을 뿐일 거다. 그런데 가뜩이나 조용한 집에 소음이 생기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또 한 번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계속해서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기 쉽다. 이런 점을 인지하고 일단 우리도 매트 시공을 한 부분 위에 또 두꺼운 매트 큰 것을 두 장 깔았다. 이 정도면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소음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곳에 조치를 취해두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실내화를 신었다. 가급적이면 9시 이후 늦은 밤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도록 조치하고, 아이에게도 부드러운 말로 계속 조심시켰다. 일단은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칙 2. 중재자를 통해 연락하라.


"죄송합니다.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경비실을 통해 연락을 주셨으면 합니다."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각종 층간소음 사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웃 간에 직접 말하게 되면 감정이 상할 수 있으니 경비실을 통해 이야기하라. 이 말에 크게 공감이 됐다. 아랫집에서 짜증을 내는 말투로 여러 번 연락을 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동시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도 생겼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주며 최대한 조심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불쾌한 감정까지 더해지니 이성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직접 연락을 했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엄청난 멘털의 소유자나 성직자가 아니라면 꼭 중재자가 있는 편이 좋다.


원칙 3.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편지를 썼다. 편지 형식이긴 했지만 거의 업무 기안처럼 현재 이 편지를 쓰는 배경 상황과 우리 집의 대응사항 등을 자세하게 썼다. 맞벌이 부부이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녁 6시까지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는 점. 만약 그 사이에 소리가 난다면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설치한 매트 시공한 사진을 크게 붙여두고, 그 위에 또 다른 두꺼운 매트를 깔아 거기에서만 놀게 한다는 점 등을 꼼꼼히 써두었다. 물론 매트 시공할 때 든 비용에 대한 영수증을 붙여놓았다. 우리가 금전적, 시간적으로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 향후에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썼다. 우선은 최대한 조심하겠지만 사람이기에 피치 못하게 소리가 날 수 있다며 만약 소리가 조금이라도 거슬리시면 경비실을 통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층간소음위원회라는 곳에 정식 조사를 해서 정말 이 소리가 소음에 해당되는 것인지를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사실 이건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리의 빈도가 잦지도 강도가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띄운 승부수였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조심했기 때문에 이 정도 소리에도 불만이 있다면 아랫집 사람들이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이 문구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편지를 쓴 후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거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기하게도 아랫집에서 항의 연락을 딱 한 번, 그것도 경비실을 통해 받았다. 사실 우리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전에도 똑같이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고, 아이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들어와서 나갔다. 하지만 이웃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 건 대응 방식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층간소음의 사례가 우리 집처럼 마무리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개념 없는 윗집도 많고 또 아랫집도 많다. 이 문제 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그만큼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특히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 중에 중요성이 꽤 높은 사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혹 있다면 이 글을 보면서 조금 힌트를 얻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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