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절 밥상 대첩

두 번 차리고 한 번 받은 밥상

by 서이담
그림: 서이담
어머님,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시어머님의 아빠, 그러니까 시외할아버지 건강이 많이 좋지 않으시다. 시어머님으로서는 시외할아버님과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 될 것 같았다. 우리 집이 시외할아버지 댁이랑 가까워서 이번 명절에는 지방에 있는 시댁에 내려가지 않고 대신 시부모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친정집 방문을 생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니 마침 추석 연휴에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다고 해서 그럼 엄마 아빠도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추석은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치르게 된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부담이었냐 하면 아니다. 연휴에는 으레 차가 엄청 막히기 때문에 상차림 몇 번 하는 게 그 교통체증을 뚫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먼저 제안을 드리기도 했다. 나름의 꼼수였달까. 또 남편 회사에서 복리후생비로 우리 집에 고기를 두 박스나 배달을 해주어서 식재료 준비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친정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을 위한 상차림을 미리 고민하고,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손질하는 그 시간이 나름 재미가 있었다.


1차 대접의 날


먼저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코로나 때문에 이사한 지 꽤 되었는데도 친정 부모님이 집에 와서 자고 가신 건 처음이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두고, 내가 잘하는 유산슬(이라고 쓰고 아무렇게나 볶은 요리라고 읽는다)을 만들어드렸다. 식구들이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은 내가 백신을 맞으러 가기로 되어 있어서 서울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섰다. 엄마와 대중교통을 같이 이용한 게 거의 몇 년 만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데 별 일 아닌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엄마도 멀리 사는 딸내미한테 할 이야기가 많으셨는지 먼저 내리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끊이지 않고 풀어놓으셨다. 가까이 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을 맞고 오는 길에 엄마가 있는 역으로 가서 함께 만나서 집으로 왔다. 저녁때가 되니 백신의 효과가 저릿하게 왔다. 갑자기 몸이 축 늘어지더니 몸살 기운이 뻗쳤다. 진통제를 먹고 자리에 누웠다. 친정엄마와 아빠가 아픈 내 모습을 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작별인사도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약간 용두사미같이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1차 대접의 날도 무사히 지나갔다.


2차 대접의 날


백신을 맞고 한 이틀 동안은 몸 상태가 개운하질 않았다. 다음 날은 정말 몸이 좋지 않아 밥순이가 밥맛을 잊을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몸이 차차 나아졌고 시댁 어르신들이 오실 동안 여기저기 빈 서울을 다니며 연휴를 만끽해보기도 했다. 김밥을 직접 싸서 공원에 가 아이와 남편과 함께 나눠먹고 그늘막에 자리를 펴고 누워 책을 본다던지, 아이가 가고 싶어 하던 자동차 전시장에 가서 구경을 하는 등 하루에 한 가지 씩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아주 잘 보냈다. 지방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빠지니 여러 모로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또 친구가 갑자기 집에 들른다고 하더니 내가 비싸서 감히 사지 못했던 샤인 머스캣 세 송이와 큼지막한 파이를 나누어주었다. 고마워 친구야. 친구 덕분에 시댁 식구들한테 대접할 소중한 후식 거리가 마련되었다. 사실 친정엄마가 오실 때 샤인 머스캣을 사 오셨는데 아이가 잘 먹어서 벌써 다 먹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뭘 대접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너무 잘됐다.


이미 친정부모님께 대접해온 메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메뉴와 거의 똑같이 대접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장을 보고 재료 준비를 했다. 한 번 해봐서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댁 어른들이 도착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착착 내어드렸다. 다행히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상차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시고 고맙다고 말해주시니 그게 참 기분이 좋았다.


3차 대접은 우연히


두 번의 대접을 잘 치르고 나서 연휴가 거의 끝나가던 날, 사촌 형님네 집에 초대를 받았다. 사촌 형님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터라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냈는데 오촌 조카가 우리 아이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화가 왔다. 사촌 형님네가 이사를 하신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집들이 겸 해서 놀러 가기로 했다. 오예!


급히 방문한 집이었는데 뜻밖에 식사 대접을 받았다. 사촌 형님네가 명절이라 고기는 물리게 많이 먹었을 것이니 초밥이 어떻냐고 하셔서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초밥을 엄청 시켜주셨다. 먹을 사람은 네 명인데 식당에서 6명분의 간장과 수저를 챙겨줄 정도였으니! 8인용 식탁이 가득 차도록 대접을 받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졸지 말라며 커피와 탄산수를 챙겨주실 정도였다.



나는 과연 이렇게 후하게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을 대접했었나?


식사 대접을 받고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손님 대접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꽤 열심히 오실 손님들을 생각하고 준비를 했는데 막상 내가 대접을 받고 보니 이렇게까지 후하게 대접을 해주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음식이 부족한 게 싫어 늘 넉넉히 시킨다는 형님네 말에 따라 우리는 음식을 꽤 많이 남겼다. 반면에 내가 만든 음식은 만드는 종종 동이 났다. 다 팔렸다. 당시에는 진짜 맛있게 드셨구나 하고 좋게 생각했는데 혹시 부족하게 준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 인색하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됐다.


지금 돌아보니 사촌 형님네 저녁 초대가 나한테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 싶다. 첫 번째 의미는 내가 대접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크게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형님네서 나는 꽤나 즐겁고 풍족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말았던 내 마음가짐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는 거다.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다고 했던가, 풍족하게 받은 만큼 또 넉넉히 베풀 힘을 기르는 그런 추석을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소중한 아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