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주어졌으나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사야 한다. 내가 먹고 마시고 쓰는 것들이 대부분 돈을 주고 산 것이다. 가끔은 구매의 부산물인 쓰레기들을 정리하다가 내가 이렇게도 많은 물건을 쓰고 버리는구나 하고 진절머리 칠 때도 있다. 무얼 그렇게도 사 모았는지 세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사지 않은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네.
1. 든든한 가족
나는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수동적으로 엄마와 아빠를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그들 또한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결과로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 이상의 토대가 되어준다. 값을 주고 사지 않았다. 거저 주어졌다.
2. 남편의 애정과 수고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정략결혼 같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남편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돈을 주고 사 오지는 않았다. 운 좋게도 서로에게 어떤 채무관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려하며 돕고 살고 있다. 청소 도우미로, 운전기사로, 베이비시터로 이것저것 남편의 노동에 빼곡하게 값을 매기면 내 월급만큼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푼 주지 않아도 애정을 가지고 나와 가정을 살펴준다. 감사한 일이다.
3. 아이와의 눈 맞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사실 꽤나 돈과 수고가 든다. 하지만 돈을 냈다고 이 모든 경험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이 보물 같은 시간을 선물 받았다. 아이의 까맣고 꾸밈없는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 깊이 행복함이 차오른다. 물론 몇 분 지나지 않아 힘듦이 몰려오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신비로운 시간을 나는 선물 받았다.
가장 소중한 것은 거저 주어졌다. 잃어버리면 다시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대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소중함을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