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잘 살아왔다는 증거
20대의 마지막 날, 남들은 계란 한 판으로 셀 만한 나이가 싱숭생숭하고 슬프다던데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막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닥쳐올 고난의 크기를 짐작하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게 행복에 도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20대에 결혼과 출산 모두를 해냈다는 게 스스로 참 대견하게 느껴져 묘한 성취감마저 들었다.
10대에 나는 불안정했다. 왕따를 한 번 당했기 때문일까 사람 관계에 굉장히 예민해졌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 늘 전전긍긍했다. 모두에게 외면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열등감도 많았다. 열등감을 누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끝까지 그러지는 못했다. 10대는 불안함과 열등감이 많았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10대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20대에 나는 조급했다.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자진해서 고시라는 늪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계속해서 할 일은 아니다 싶어서 3~4년 정도 공부를 하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공부만 하다가 세상에 나오니 취업이 쉽지 않았다. 죽을 둥 살 둥 노력을 해서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매운맛을 봤다. 누구도 봐주지 않고, 봐주지 않는 사람들을 피할 수도 없는 그곳이 바로 회사였다. 돈 버는 일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때 남편을 만났다. 사막 속에 오아시스 같은 연애를 길게 즐기기도 전에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20대에 결혼을 하고 그다음 해에 아이를 가졌다. 29세의 마지막 날은 조리원에서 보냈다. 그날은 참 따뜻하고 어리버리했다.
30대에 들어서서 나는 조금 여유로워졌다. 몇 번의 좌절을 맛보고 나서 자연스레 조급함을 버렸다.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행복함을 배웠다. 내게는 따뜻한 남편과 밀당을 잘하는 귀여운 아들이 있다. 내 손으로 내가 쓰고 조금 남는 돈을 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물론 그 마음을 먹기가 쉽진 않지만.
다시 불안했던 10대와 조급했던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절대로.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