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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Feb 04. 2022

어느 새벽, 응급실의 풍경

먹먹하고 짠한 새벽시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연휴 끝에 회사에 복귀했다. 어렵지 않게 하루를 마치고 저녁상을 맛있게 차려 먹고 운동까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메스꺼움이 있더니 곧 구토가 나왔다. 네 번째로 변기를 부여잡고 위에 있던 모든 내용물을 내 눈으로 모두 보았을 때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응급실에 가는 일은 제일 피했으면 했다. 나보다 더 위급한 환자도 많을 거고, 또 응급실에 가면 정신없는 상황에 놓여야 하니까 제대로 된 케어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제는 이런저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집에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이가 잠들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응급실에 가기로 하고 남편에게 부탁해 짐을 챙겼다. 내복 위에 옷을 껴입고, 혹시 입원을 할지도 모르니 속옷도 한 벌 준비했다. 혹시나 가는 중에 구토를 할까 싶어서 비닐봉지도 두 개 겹쳐서 손에 단단히 들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곧 도착했고 나는 응급실로 가는 택시에서 구토가 나오지 않도록 심호흡을 했다.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환자분~잠깐 계세요!


간단한 체온 검사와 수납을 마치고 드디어 병상에 누웠다. 시끄럽진 않지만 결코 잠이 들 수 없는 그런 분위기의 응급실이었다. 내 증상을 말하고 의사가 내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더니 급성 장염일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진정제와 수액을 놓아주었다. 택시에서부터 구역질하는 증상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수액을 맞고 조금 지나니 속이 훨씬 편안해졌다. 내 몸이 편해지니 그때부터 주변 상황이 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급체를 한 것 같아요. 너무 메스꺼워요.


응급실에는 나 같은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날 장염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세 명 정도 들어왔다. 


"환자분 ~누워보세요. 혹시 뭐 큰 수술 하거나 그런 적은 없으세요? 복용하고 있는 약물은 없으시고요?"


"15년도에 유방암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


"네 그렇구나. 선생님 모셔올게요"


"환자분~응급의학과 의사예요. 속이 안 좋으시다고요? 언제부터일까요?"


"아까 7시쯤 저녁 먹고, 저녁 먹기 전에 과일 주스를 먹었는데 그게 이상했나 봐요."


"한 번 볼게요. 음... 이건 체해서 그런 거 같진 않네요. CT 찍어볼게요."


처음에는 나랑 같은 증상의 환자인 줄 알았는데 병의 양상이 달랐나 보다. 더 큰 병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아픔이 새삼 가볍게 느껴졌다. 같은 증상으로 들어왔어도 이 분은 병원에 좀 더 오래 계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먹먹해졌다.


모르핀 주입할게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신 거예요?


이런 분도 계셨다. 코로나로 수입이 변변치 않아지자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가장이었다. 사고를 당한 직후 엑스레이 상에는 별 문제가 없어 약만 처방받고 다시 배달 일을 했는데 갑자기 사고 난 부위가 너무 아파져서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였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모르핀을 주사할 정도로 힘겨워했다.


내가 이제 집에 가도 좋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응급실에서 나갈 때 이 분은 폐에 물이 차서 몸에 차디찬 관을 넣어서 물을 빼내는 시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학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멋지거나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무척 짠했다. 물론 커튼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볼 순 없었지만 말이다.


자 이제 집에 가시면 됩니다. 혹시 계속 아프시면 다시 내원하세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집으로 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응급실이라 나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환자들이 많았고, 수납을 하고 약을 타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평할 수 없었다. 내 상황이 나아졌음에 감사했고, 훨씬 가벼워진 속으로 집에 귀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은 응급실이 조금 덜 바쁜 날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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