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감사 인사
아침 출근길은 늘 남편과 함께다. 어린이집에 자는 아이를 업어다 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꽤나 가벼웠을 때에는 혼자 할 만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18킬로가 넘어서 혼자 안아다 주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재미에 등원 길이 그리 고되지는 않다.
남편과의 대화 주제는 다양하다. 오늘은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 모아 오신 목돈을 나에게 주셨다. 당시 나는 '누구에게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겠다. 내 힘으로 결혼하고 살아보겠다.'라는 생각에 나름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위 사람의 도움 없이는 서울에 빌라 전셋집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모르고 너무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싶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했고, 할머니는 고마워하기는 커녕 극구 사양을 하는 손녀딸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으셨을 거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할머니는 결국 내게 돈을 쥐어 주셨다. 나는 할머니께 떨떠름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차나 한 대 사라고 말씀하셨지만 차마 그 돈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은행에 예금해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돈은 내 기억에서 잊혔다.
몇 년 뒤 전셋집에 살던 우리 가족은 드디어 우리만의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벌고 있는 모든 돈을 모두 전세 빚을 갚는 데 썼기 때문에 계약금으로 줄 돈이 많이 없었다. 그때 생각났다. 내겐 할머니가 주신 돈이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돈과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돈을 모아서 집 계약금을 가까스로 마련했다. 계약금을 입금하고 잔금을 치르고 우리는 드디어 우리 이름으로 된 집에 입성했다. 당시에도 빚을 더 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뚜렷하게 하지 못했던 거 같다.
벌써 세월이 2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야 숨통이 트였는지 나는 오늘 할머니가 돈을 주셔서 나와 남편이 이 집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차 안에서 떠올리게 되었다.
'감사하다.'
비로소 이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잊기 전에 할머니께 전하기로 했다.
"여보세요~"
"할머니!"
"응 이담이. 웬일이야?"
"할머니~예전에 저 결혼할 때 주셨던 돈 있잖아요. 그거 우리 집 계약할 때 계약금으로 썼던 거 아시죠?"
"응응 알지~"
"할머니 그때는 뭘 몰라서 감사하단 말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 우리 집에 할머니 지분도 많이 있으니까 언제든 놀러 오시고 맛있는 거 해달라고 큰소리도 뻥뻥 치셔도 돼요!"
"허허 알았어~.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연락 줘서 고마워!"
돈을 받을 때는 몰랐다. 그때는 돈의 씀씀이를 잘 몰랐던 때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몰랐던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만큼의 돈을 모아서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드는지 알게 되고, 그 모은 걸 선뜻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인지 알게 된 이 시점에 이 돈은 그냥 아무런 이름 없는 돈이 아니었다. 돈도 마음이고 사랑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얼마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늦지 않은 이때 이 마음을 전하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