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는 거실 (1)

섭섭한데 나름 할 만하다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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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뒤에 (1)을 붙인 이유는 1개월쯤 후에 다시 TV 없는 삶에 대한 후기를 써보고 싶어서다. 그렇다. 나는 어제 거실에서 TV를 없앴다. 결혼을 하면서 오빠들이 준 돈으로 혼수처럼 했던 TV는 두 번째 집에서도 함께였다. 거실 벽이 좀 더 넓은 탓에 조금 작아 보이긴 했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텔레비전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진다던가 지익 거리는 느낌이 났다. 몇 번은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이 현상이 반복적으로 생기자 그제야 알게 됐다. 아 이제 이 TV의 수명이 다했구나. 잘 가라 나의 텔레비전 전아.


처음부터 텔레비전을 없애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알아주는 콘텐츠 중독자였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본방사수를 하는 사람이 나였다. 처음에는 더 크고 좋은 TV를 사려고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한 번 알아보는 건 어떠냐고 운을 띄웠는데 남편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몇 주 전 아이패드를 사겠다고 신나게 이곳저곳을 뒤적이고 돌아다니던 사람의 자세와는 정말 달랐다. 며칠을 졸라 특가로 뜬 75인치 텔레비전을 사기로 마음을 정했는데 모든 걸 준비한 다음날 특가로 나온 상품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처럼 아이를 하원 시켜서 왔는데, 그날은 남편이 야근이라 함께 저녁을 보내지 못했다. 평소에는 TV를 켜놓고 식사를 하곤 하는데 그날 따라 아이와 둘이 있었던 나는 아이와 눈 맞춤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참 묘했다. 평소에는 텔레비전을 틀어 놨었기 때문에 아이의 말들이 TV를 보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아이의 말이 쏙쏙 잘 들리기도 하고 심지어 재미가 있었다. 아이의 말투도 귀엽고 말의 내용도 재미있었다. 그동안 TV 때문에 이런 시간을 나 스스로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TV를 한 번 없애봐?


마음을 먹고 텔레비전용 벽걸이 설치를 해 준 업체에게 연락을 했다. TV 특가는 놓쳤지만 여기 업체는 내 전화를 제깍 받아서 답장을 줬다. 5만 원이란다. 다음 주에 시간 되냐니까 시간이 정말된단다. 그래서 어제 업체 아저씨가 우리 집을 방문했고, 몇 번의 드릴 작업 끝에 TV는 해체되었다.


만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의 변화는 크게 없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는 TV가 없어져서 슬퍼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아이패드를 사용해 아이가 좋아하는 짧은 애니메이션 몇 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나와 목욕을 조금 길게 했고, 목욕이 아깝다 싶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놀다가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잠에 들었다. 섭섭하지만 그리 허전하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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