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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r 11. 2022

몸으로 와닿는 범죄

너무나 취약한 우리들

오픈 채팅방을 하나 만들었다. 핸드폰 번호를 그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는게 껄끄러워서다. 그리고 몇 가지 태그로 오픈채팅방 주제를 입력하고 다른 플랫폼에 광고를 게재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톡!"


아직 본격적으로 광고도 하기 전인데 메시지가 왔다.


'오! 메시지다.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대박인데?' 하면서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대면으로도 진행하시나요?"


"네, 가능합니다."


"시급 5만 원 정도로 드리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살짝 의심을 했어야 했다. 시세는 2만 5천 원 정도였는데 5만 원을 준단다. 좀 더 확실하게 요구사항을 알고 나서 비용을 책정하겠다고 하고 상세한 내용들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상대방 쪽에서 내 성별을 물어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스커트를 입어주실 수 있나요?"


황당했다. 그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채팅을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를 남기고 나왔다.


"그런 요청사항 받지 않습니다."


채팅방을 나왔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접해왔던 N번방 사건 같은 일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이렇게나 손쉽게 범죄가 손을 뻗고 있었다. 


다행히 더 진행되기 전에 뚝 끊고 나왔지만, 만약 내가 아닌 돈이 더 절박하거나 어리바리한 사람이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에 하나하나 응하기 시작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다.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남 일이 아니다 싶다. 편의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진심으로 분노가 인다. 한편으로는 무서움에 떨리기도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가까이에 있었다. 너무나 가까워서 놀랄 정도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던 이 세계가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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