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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r 14. 2022

작지만 무겁습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사소한 것들

몇 달? 아니 몇 년은 되었을 것이다. 등이 자꾸 가려웠던 것이. 어릴 때 아토피로 고생 좀 했던 터라 피부병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이 증상의 병명을 스스로 '등드름'이라고 진단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여드름에 좋다는 비누를 사용하고, 바디 스크럽이라는 생전 안 쓰던 도구들도 샀다. 만지거나 옷이 닿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등이 파진 옷까지 샀다. 노력이 가상했던지 등 간지럼증은 거의 없어지나 싶었다. 그런데 또 어느 날, 등에 새빨갛게 상처가 나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잠결에 벅벅 긁었던 흔적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 정말 싫다 싫어..."


드디어 피부과에 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이 등원을 시키고 나서 바로 지난번에 꽤 약이 잘 들었던 동네 피부과에 갔다. 2번으로 왔는데도 꽤나 대기를 해야 했다. 1시간이 채 안되었을 무렵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서이담 님~"


"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 또 내 등 상황을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간지럼증은 그 원인을 딱히 알 수가 없어요. 비염처럼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기 때문에 나빠졌을 때는 이렇게 병원에 오셔서 약을 조금 드시면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보습이에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등에 로션을 듬뿍 발라주세요. 대부분 건조해서 긁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엥?'


생각보다 원인이 너무 간단했다. 건조함이라니. 이게 끝이었나?


"로션 종류나 이런 건 따로 가려야 할 건 없나요?"


"네~그런 건 없고요. 뭐든 듬뿍듬뿍 발라주셔야 해요."


그리고 그날 밤 등에 로션을 듬뿍 바르고 잤는데 다음날 등에 붉은 기가 싹 사라졌다. 물론 약도 3일 치 주셨고 잘 챙겨 먹기도 했지만, 약을 다 먹고 난 뒤에 로션만 듬뿍 발랐을 뿐인데도 상처도 거의 아물고 등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진짜 원인은 건조함일 수도 있다는 것, 이 간단한 사실을 나는 알 수 없었다. 피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바로 인지하고 병원에 갔었으면 내 등이 이런 수난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원인이 화장품이 아닐까, 씻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사실 원인은 아주 간단하고 사소했다.


가끔 감정이 격하게 올라오거나 짜증이 급작스레 커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예상외로 원인은 아주 사소했다. 배고픔이라거나, 피곤이라거나, 수면부족이라던지 그런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곤 했었는데 돌아보면 그 간단하고 사소한 일이 내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주지 않나 싶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노는 것, 그리고 보습제를 꼭꼭 바르는 것도 모두 다 내 일생의 소중한 부분이다. 놓치면 안 되는 소중한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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