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을 기대하며
며칠 전 남편과 올레길을 다녀왔다.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이었기에 올레길 한 코스만 제대로 걷고 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첫째 날,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고 숙소에 짐을 맡긴 뒤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던 그 길을 초행이었던 우리는 7시간이 넘게 걸려 완주를 했다. 완주를 한 뒤에는 골반이 욱신 거릴 정도로 피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 풍경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모두 즐거웠다.
다음 날은 다른 섬에 갈 예정이었는데 한 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섬 안에서 걸을 수 있는 올레길 코스도 욕심이 났다. 남편은 자전거를 빌려서 한 바퀴 휙 돌아보는 것은 어떻냐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끝까지는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설득해 운동복을 입고 길을 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그날은 섬이 한창 아름다울 때여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배 표를 사는 것부터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왕복 배 표가 2시간 간격으로 있어서 올레길을 다 걷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레길 두 코스를 완주할 수 있겠구나 들떴던 마음도 갑자기 푹 꺼져버렸다. 혹시나 해서 배 선착장에서 물어보니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표를 더 늦은 시간으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가파도 구경을 마치고 제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근방에 봐 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근처 북까페로 갔다. 세심하게 잘 꾸며진 한적한 북까페에서 나는 책 하나를 고르고 음료 두 잔을 시켜 자리에 앉았다. 내가 고른 책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반 이상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주인장에게 근처에 볼 만한 다른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혹시 제주 현대미술관 가보셨나요?"
"아니요."
"거기가 산속에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고 전시품도 상당히 잘 되어있어요. 한 번 가보실만해요."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주인장의 추천을 받고 우리는 그리로 이동했다. 한라산 중턱 즈음에 자리 잡은 제주 현대미술관은 정말 좋았다. 분위기도 좋고 안에 미술품도 재미있었다. 그곳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근처 다른 미술관도 가 볼 수 있었다. 다른 곳도 물론 좋았고, 예술마을 자체의 분위기도 참 좋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올레길을 완주했다면 서점에 들러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그 길을 다 걸었다면 이 미술관에 올 시간이 났을까?'
좋은 일은 또 있다. 내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래서 아쉬움과 실망이 가득한 상태가 되더라도 거기서 그치지는 않아야겠다. 오히려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 덕분에 더 새롭고 재밌는 길을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