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라는 핑계

아이를 아이로 보는 눈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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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등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등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남편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아이와 둘이 온전히 있는 시간은 피하고 싶었지만 차갑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해야 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아픈' 아이이지 않은가. 아프다는 말은 곧 짜증이 많다는 말이다. 그 짜증을 다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이는 잘 놀다가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했다. 30분 정도 보기로 약속을 하고 30분이 지나 텔레비전을 끄려고 하는데 아이가 마구 짜증을 냈다. 내 마음속에서도 스멀스멀 화가 올라왔다.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함께 화를 내다가 후회한 적이 많았기에, 아니 매 번 후회했기에 오늘은 한번 꾹 참아보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일단 지금은 텔레비전을 끄는 시간이니까 텔레비전 끄고 엄마는 나가 있을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는 방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내가 나간 후에도 나와 놀지 않고 말도 하지 않겠다며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생떼를 썼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아이는 내가 있는 거실 쪽으로 스멀스멀 나왔다. 그리고 내 눈이 향하는 곳쯤에 앉아 웅크려 있었다. 나는 아이 쪽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내게 폭 안겼다. 그리고 침대에 아이를 뉘었다. 아이는 오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아... 잠투정이었구나.


가끔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다가 화를 벌컥 낼 때가 있다. 사실 가끔도 아니다. 매일 한 두 번 정도는 그런 일이 있다. 남자아이의 엄마는 목소리가 커진다고 하는데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는 철이 없고 생각이 미성숙한 존재다. 사실은 당연하다. 아이는 어른만큼 사회적인 학습이 되지 않았고,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낼 때는 이 사실을 깡그리 잊었다. 아이가 어른처럼 나를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이는 정상인데 어른인 내가 아이를 아이로 봐주지 않아 발생한 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내 과거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어른이 된 나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훈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순간들 말이다. 사실은 화를 내기 보다는 가르치고 기다려주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조용히 사과를 해본다.


"그때 그렇게 화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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