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가장힘들게 하는 것이 당신을 움직인다
"으엇 저거 뭐야!"
어느 날 저녁, 거실에서 여느 때처럼 가족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니 여리여리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바퀴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재빨리 휴지로 바퀴벌레를 탁 잡아서 지그시 눌러준 후 변기에 버렸다.
‘한 마리가 아니면 어떡하지?’
바로 이런 걱정이 들었다. 한 마리는 잡을 수 있었지만 꿈틀거리는 여러 마리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바로 벌레를 잡아주는 용역 업체를 불렀다.
다음날 점심쯤 용역 업체 직원이 출장을 와서 집을 점검해주었다. 부엌이랑 다용도실 구석구석을 살피더니 초파리 알과 허물 벗은 바퀴벌레의 흔적을 테이프에 붙여서 보여주었다. 초파리는 쓰레기통에서 열심히 번식 중이었다.
전문가는 우리가 제일 염려했었던 바퀴벌레는 침입 초기 단계인 것 같다고, 아마 택배 박스 같은 데에 딸려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한 숨 돌렸다. 바퀴벌레가 집안 곳곳에 마구 퍼져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초파리들은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바깥에 둔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용역업체 직원이 돌아간 뒤 우리 부부는 이사 온 뒤로 거의 6개월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다용도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작은 애벌레들이 쓰레기 통 안에서 단체로 꿈틀대는 소름 끼치는 장면도 보았다. 그러나 이게 바퀴벌레가 아닌 게 어디냐 하고 쓰레기 봉지에 딱 담아서 바로 수거장에 버렸다. 쓰레기 통 안을 비우고 세제를 넉넉히 물에 풀어 쓰레기통에 채운 뒤 꼼꼼히 닦아 정리하고, 다용도실에 겨우내 깔아 두었던 매트도 물청소를 하고 빨래 걸이에 널어 말렸다. 그리고 나니 다용도실이 정말 깨끗해졌고 많이 보이던 초파리들도 싹 사라졌다.
‘한 마리 바퀴벌레가 나를 움직였구나.’
한바탕 바퀴벌레로 인한 소동을 치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저분한 벌레를 본 건 기분이 나쁘지만, 결국 덕분에 집이 말끔해져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집을 치웠기 때문에 바퀴벌레의 번식을 막을 수도 있었으니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덧붙여서 삶에서 바퀴벌레 같은 누군가 혹은 어떤 일이 신경을 긁고 있다면 그걸 꼭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그 사람이나 일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니까.
그리고 그 사람과 일을 바퀴를 보듯 피하거나 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방향을 한 번 바꾸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어쩌면 삶의 활력소로 삼으라고 신이 내려 준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바퀴벌레라는 징그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바퀴벌레는 주위에 없었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