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은 선배들만 해줄 수있는 게아니었다
이사를 앞두고 있던 때 주말마다 이사 준비로 참 바빴다. 전세로 살았던 첫 집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모두 풀 옵션으로 되어 있어서 결혼할 때 텔레비전 빼고는 아무런 가전제품도 장만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사 갈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꽤 값이 나가는 가전들을 하나씩 사야 했다.
지출이 상당했기에 우리 부부는 신중을 기했다. 인터넷 최저가 물건들도 알아보고, 지인을 통해서 대형 가전회사의 직원 몰을 뒤져보기도 하고, 박람회 같은 곳에 들러 제품 가격을 비교해봤는데 그 과정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영업사원들은 저마다 홍보하는 제품과, 특징과 기능, 그리고 가격 조건을 이야기했고 나도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를 가지고 역 제안을 했다. 그 과정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이 이렇게 천차만별이구나 알았다. 흥정 그 자체보다도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관찰하는 게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은 진짜 중요한 정보보다 각종 현혹시키는 말로 나를 설득했지만, 제품의 세부 사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자 대답을 잘 못해서 신뢰를 확 떨어뜨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진중했지만 옆 상점 험담을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피곤했다. 어떤 영업사원은 사람은 참 진실되고 좋아 보였지만 제시하는 조건이 매력적이지 않아 안쓰러웠다. 또 어떤 사람은 상대편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선 아마 이런 가격을 주는 곳은 없을 거라 장담하기도 해 어이없기도 했다.
이렇게 알아보다가 결국 어떤 판매원에게 영업을 '당하고' 말았다.
먼저 이 사람은 제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품을 상세하게 알았기 때문에 이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왜 더 비싼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알려주었고, 결국 내가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게끔 이끌었다.
두 번째, 이 사람은 내가 원하는 바를 딱 알아봤다. 나는 이미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제품이 어떠한가 보다는 이 제품을 얼마나 싸게 줄 수 있느냐가 궁금했다. 이런 점을 눈치채자마자 바로 가격 설명으로 넘어가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세 번째,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최선을 다해 나를 대했다. 집에 가려고 보니 아이가 놀다가 매장에 신발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이 영업사원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반신반의하는 맘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흔쾌히 신발을 찾아서 보관해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다음번 미팅이 성사되었고, 우리는 결국 계약을 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해외 고객에게 제품을 수출하고 그 과정을 살피는 일을 했었다. 영업이라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의 일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하게 됐다.
‘내가 정말 이 사람처럼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을 상세하게 잘 알고 있나? 이 사람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나?’
어느샌가 나는 직장에서의 일은 직장에서만 배우고, 생활 속의 일은 생활에서 배운다고 구분 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보니 내 생활 속 어디서나 일 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경계를 허물다 보면 직장에 있는 시간도 내가 채워지는 시간으로 조금이나마 바꾸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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