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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Oct 18. 2022

내 아이는 쉬운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착하다"라는 미끼

"우와~정말 착하다."


“착하지~”


“옳지, 착하다.”


아이에게 어른들이 잘 쓰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생각 없이’ 잘 쓰는 말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이냐면, 의도는 가지고 있지만 결과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말이라는 것이다. 대개 어른인 우리는 아이가 무엇인가 칭찬받을만한 선한 일을 했거나, 아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우리의 기대치보다 뛰어날 때 이 말을 내뱉는다. 좀 더 정확하게 쓰자면 어른들인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이나 말을 해 줬을 때 보상처럼 주어지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전제와 결과가 있다. 아이는 어른의 관심과 인정을 먹고 자란다는 게 전제이고, 이런 칭찬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점점 더 어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수월해진다는 게 결과다. 의도치 않게 우리는 점점 남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쉬운 사람들을 만든다.


나 역시도 착하다는 칭찬을 듣기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특히 엄마와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없다는 열등감 때문에 아빠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인정받기를 원했다. 내가 그 아이들보다 뛰어나야지만 나만 아는 결핍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하라는 대로 하려고 아이로서는 어려운 수준까지 노력했다.


애석하게도 이런 학습된 태도와 경향은 굳어진다. 어른이 되어 누구의 간섭이나 지도를 받지 않고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동으로 실행된다. 아무도 의식하라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 가끔은 너무하다 싶게 의식한다. 나의 의식의 흐름을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는 하이에나 같은 몇몇 타자들은 이런 나를 이용하기도 하며, 자발적으로 이용당한 나는 가끔 억울해진다.


이렇게 억울한 나도 아이에게 무심결에 "착하다"는 칭찬을 했다. 역시나 내 의도대로 아이가 움직이거나 따라줬을 때 그런 말이 나왔다. 어쩌면 착하다는 표현은 아이를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미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정신이 든다. 아이가 나 같은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부터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


"밥을 잘 먹어 착하다" 보다는 "밥을 골고루 먹어서 튼튼해지겠네."라고 말하겠다.


"방 정리를 잘해서 착하다" 보다는 "방 정리를 잘하니 먼지가 없어지겠네."라고 전해주겠다.


"친구에게 양보해서 착하다" 보다는 "친구에게 양보를 해서 사이가 좋아지겠구나." 하고 이야기하겠다.


아이가 칭찬을 바라고 행동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좋은 행동을 선택하게끔 돕고 싶다. 그래서 좀 더 노력해서 말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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