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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Dec 16. 2022

말 고르는 어린이

나보다 훨씬 낫네

이제 아이가 6살, 아이를 기른다기보다는 가르친다는 게 뭔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아이는 아기처럼 어리광을 부리다가 부모인 우리가 그래선 안 되는 이유를 차근히 설명해주면 잘 듣고 그걸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근데 그 모습이 나름 감동이 있다.


어느 날, 아이가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른 육퇴를 즐기다가 아이보다 한 3시간쯤 나중에 침대로 들어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우리가 아주 곤히 자고 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일찍 잠든 날은 이렇게 한 두 번씩 새벽에 깨곤 한다. 나는 익숙하게 “으응~”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이는 내가 잠이 아주 깨진 않을만한 작고 보드라운 목소리로 내게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내려가서 자도 돼요?”


“응응~내려가서 자”


바닥에 내려가 요를 편 곳 위에서 자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지 싶었다. 그런데 더 신기했던 건 아침에 남편과 대화를 한 내용이었다. 아이가 새벽에 몇 차례 깨서 피곤했는지 늦잠을 잤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이것저것 대화를 했는데 내가 지난밤 아이가 내려가서 자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남편이 내 말을 이어 말했다.


“어제 재민이가 나한테는 아빠 물 한잔 주세요~라고 했어. “


“진짜? “


평소에는 짜증을 내면서 ”물 줘!”라고 명령조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날따라 아이는 내게 그랬듯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을 “요청”했다고 한다.


“웬일이지 얘가?”


“응~지난번에 내가 하두 재민이가 명령조로 이야기를 하길래, 그렇게 말하면 아빠가 듣기 싫다고 부드럽게 ‘뭐뭐 해주세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거든.”


“아~그랬구나. 그래서 간밤에 나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해줬구나.”


“응 기특하네 우리 아들.”


아이가 기특했다. 알아듣기 쉽게 아이의 눈높이로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와 그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면, 아이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 심지어 아이를 혼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머리로 이해가 가면 쓸데없이 떼를 쓰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인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내 어떤 점이 문제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걸 고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어떨 때는 그걸 고치려 노력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그걸 지적하면 기분 나빠하거나 오히려 바른말을 해준 사람을 탓한다. 어린이보다 못난 어른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생각한 후에 그걸 받아들였다. 명령조로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 존중하고, 따라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예쁘게 하기 위해 말을 골랐다. 정성스럽게 말이다.


말을 고르는 어린이라니. 그게 어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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