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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Jan 09. 2023

암온더 넥스트 레벨

미운 일곱 살, 육아 레벨 업

지난주의 일이다. 평소처럼 시간을 맞추어 퇴근을 하고 마침 재택근무였던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아이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는 남편 손을 딱 잡았는데, 내 손을 잡지 않았다. 평소에도 낮잠을 자다가 하원을 하면 살짝 기분이 나쁜 상태인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 같지가 않았다. 보통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제 컨디션을 찾고 엄마와 장난도 치던 아이였는데, 그날따라 나를 티 나게 피하고 있었다.


“재민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남편이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아이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말하기 어려워.”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곰곰이 아침부터 지금까지를 생각해 봤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내가 아이를 혼낸 적도 없었고, 딱히 잘못할 만한 일도 없었다. 내 마음에도 스멀스멀 섭섭함의 먹구름이 찾아왔다. 마음이 무겁고 꼭 울고만 싶었다. 나에게는 차갑게 대하면서 남편과는 평소처럼 하하 호호 잘만 노는 아이가 얄미웠다. 난 어른이지만 아이가 미울 때도 있고, 얄미울 때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우면서도 그랬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근 5년간 이런 적이 없던 아이라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밥을 차려주고 먹을 때도 아이는 연신 아빠와 장난을 쳤다. 아빠는 내 눈치를 보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부드럽게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묵묵히 밥을 먹다가 내 밥 속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재민이는 정말 너무해!”


속상했다. 심지어 그날은 아이와 씨름할 체력도 없었다. 피곤한 데다가 속상하고, 몸까지 좋지 않으니 울음이 났다. 방으로 들어가 조금 진정하고 있는데 아이가 아빠와 함께 조용히 들어왔다.


“재민이가 할 말이 있대요.”


“그래. 이야기해 봐.”


우물쭈물. 아이는 또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남편이 대신 몇 마디를 해주었다. 아이가 평소에 내가 조금 무섭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내가 무섭게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노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그렇지. 생판 모른 척을 해?’


‘한없이 따뜻해야 할 부모가 무서웠다니. 내가 잘못했다.’


‘서운하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했는데.’


등등 여러 생각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꼭 안아주고, 엄마가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이었다. 피곤했던 내가 먼저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재민이!! 이렇게 떼쓸 거면 니 맘대로 해!”


아이에게 늘 온화한 남편의 무서운 목소리였다. 이런 적이 거의 없는 남편인지라 잠이 확 깼다. 남편의 말인즉슨 9시 반 정도에 그림을 마저 그리고 이를 닦으러 가자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고선 아이가 이를 닦기 싫다며 남편에게 계속 놀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아이의 말을 듣고 다 놀아주고 나서도 아이가 계속 떼를 써서 겨우 이를 닦여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자려고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다 놀지 못했다고 엉엉 울며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졸린데도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참고 참던 남편의 화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내가 마침 잠이 깨서 상황파악을 마치고는 화를 내고 있는 남편에게서 애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재민아~ 이젠 잘 시간이야.”


“다 못 놀았어.”


“아니야. 아까 아빠가 이 닦으라고 이야기했을 때 재민이가 이를 먼저 닦았으면 더 놀 시간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 시간에 네가 더 놀기를 선택했으니까 이제 놀 시간이 없는 거야.”


“아니야.”


아이는 졸린지 더 말도 안 되는 떼를 썼다.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내일 더 놀자고 약속을 한 뒤 방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졸렸는지 머지않아 잠에 들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화를 낸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자요?”


“아니~”


“ 왠지, 우리 육아가 이제 게임에서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것처럼 레벨업을 한 것 같아. 예전에는 체력만 있으면 해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아이를 움직일 수 있는 전략과 인내심이 정말 많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


“응.. 그러네. 아깐 나도 참다 참다 보니 화가 너무 나더라고.”


“응~나도 얼마 전에 그랬잖아. 아이가 나한테 한마디를 안 하는데 그게 너무 이상하더라고. 난 너무 속상했었어.”


“이젠 예전에 하던 식으로 육아를 하면 안 될 것 같아.”


“응~ 당신은 이제 아이의 말을 다 들어주기보다는 규칙을 정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난 아이에게 너무 엄하게 대하기보다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버릇을 더 들여야겠어.”


“응. 우리 그렇게 해보자.”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육아의 날이 아니고, 내일은 또 내일의 게임이 있으니까. 오늘 잘 못했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우리.”


“응 그럽시다.”


남편과 이렇게 동맹의 끈끈함을 다지는 전략적 대화를 하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채 잠이 들었다. 이 날의 긴 대화를 통해 전력을 재정비하고, 다음날부터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면서 아이와의 대치를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우리는 한 단계 레벨업을 하고야 말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가 미운 일곱 살이네. 어쩐지…”


이마를 탁 치는 우리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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