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담 Feb 20. 2023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짜증에 쉼이 필요한 이유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지를 정하고, 숙소를 정하고, 가볼 곳을 정하면서 많이 들떴다. 그리고 막상 출발할 날이 되자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바빠졌다. 원래는 아들까지 셋이 떠날 여행이었는데 아들이 막판에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예약을 변경할 것도 생기고, 짐도 다시 싸게 되면서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예약했던 그곳 예약 변경 된대요?”


“아뇨. 그냥 타야 할 것 같아요. “


”진짜 안된대요? “


“응…”


“아 충전기는 챙겼지?”


“응응”


“기차 타고 가면서 충전하려고 했는데, 선이 왜 이렇게 짧아 “


계획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변경사항이 생겼고, 거기에 맞춰 딱딱 뭔가 맞질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분주하다 못해 짜증스러워졌다. 남편이 예약한 기차의 예약 변경은 힘들고, 핸드폰 배터리는 다 되어 가는데 남편이 챙겼던 충전 선이 짧아서 충전할 수조차 없었다. 짜증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향했다.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여행 분위기를 망칠까 봐 남편은 짜증을 꾹꾹 참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미안해질 내 모습을 예상하고 큰 그림을 그렸거나.


얼마 후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다른 도구와 지형지물을 사용해 핸드폰 충전에 성공했다. 역시 급하면 뭐든지 되게 마련이다. 또 마지막 날 예약한 관광기차를 취소하지 못한 덕분에 고즈넉한 바닷가 산책도 하고, 도란도란 남편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여행이 끝날 무렵 전체를 보았을 때 내가 짜증을 내고 신경을 썼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도 안 중요한데, 난 왜 그렇게 힘을 뺐을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 나와 남편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우리가 함께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대화를 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어리석은 나는 그때 그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중한 둘만의 시간을 망칠 뻔했다. 남편이 기다려주지 않고 같이 화를 냈다면 여행을 망치고 빨리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깨닫고 난 나는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별 일 아닌 걸로 짜증 내어 미안해요.”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으이구.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사과할 일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을… 참으로 어리석도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식 밖의 사랑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