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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4. 2023

뛰어넘고 있기에 넘어지는 것

약한 부분 정면돌파하기

회사에서 울었다. 그것도 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회사에서 우는 건 꼭 남들이 보는 앞에서 오줌을 싸는 것과 같다고 친구가 그랬다. 나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척 창피한 일이라는 말이다. 발단은 그랬다. 내가 팀에서 설문조사를 꾸리는 일을 맡았는데 설문조사 항목을 만드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문조사를 하는지 생각해 보고, 문항을 만들고 보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공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급한 성향 상 일을 빨리빨리 하고 넘기는 걸 좋아하는 지라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뭔가를 구성하는 일에 꽤나 약했다. 당시에 팀 업무가 흐지부지 되고 있던 터라 사람들이 크게 일에 관심이 없어서 설문을 만들고 나서 팀에 공유했을 때 별 피드백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설문조사를 시작하고 나니 응답자들이 팀원들에게 피드백들을 주었고, 팀원들도 이런 저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걸 이렇게 만들었냐” 부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냐?“까지.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난 그냥 일 하나를 받았을 뿐인데 왜 사람들이 도와주기는 커녕 스트레스를 주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해?’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맴돌았고, 이런 불만을 참다 참다가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2개월 후인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팀에 온 나는 또 설문조사를 설계하는 업무를 맡았다.


‘또? 정말 싫은데…’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간단한 결과를 도출해 내면 된다고 생각해 간단하게 설문지를 만들어서 보고를 했는데 그걸 본 팀장이 어깃장을 놨다.


“이런 식으로 대충 물어봐서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 없어요. 설령 얻어낼 수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답이에요. 다시 해오세요. “

“그럼 이 문항을 주관식으로 바꾸면 될까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깐요.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좀 생각해 봐요.”


짜증 난 말투로 팀장이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HOW’는 없고 그냥 알아서 잘 해오라는 말 같이 느껴져서 난 적잖이 당황했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짜증이 났다. 일을 접고 주말을 맞았다. 쉬는날임에도 일 생각이 났고, 어떤 식으로 설문을 짜야할까를 머릿속으로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내가 생각한 대로 방안을 짜 보고, 주변 사람들 의견을 구했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정과 수정을 거듭한 끝에 팀장에게 설문지를 가지고 갔다. 그랬더니 팀장이 또 싫은 소리를 했다. 이것저것 지적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 주와는 달랐다. 지난주에는 어떤 구체적인 의견조차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엔 그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점수로 따지자면 지난번에는 10점이고, 지금은 75점쯤 되는 것 같았다. 급하게 시킨 다른 업무가 있으니 이 정도만 수정하고 본인에게 넘기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본인에게 넘기면 마무리가 될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예전 팀에서 설문조사를 하다가 울던 일이 생각나 포기하고도 싶었다.


“저 원래 이런 거 못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번 꾹 참아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꾸 고치고 다듬어봤다.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게 내가 약한 부분이니까. 약한 부분은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어떤 유튜브 채널에 나온 나이 지긋한 사회생활 선배가 이야기를 했다. 내 단점을 발견했다면 그 상황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닥뜨려보라고. 그러면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헤매고 넘어지고 있는 건, 성장하면서 내 안의 벽을 뛰어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수준의 업무를 하면서 편하게 살았다면 이렇게 어리둥절하지도, 좌절할 일도 없을 테니까.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어야 해?’라고 울며 묻는 그때의 나에게 이제는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뛰어넘는 연습을 하는 사람은 자꾸 넘어지고 다치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연습이고 언젠간 꼭 멋지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답 말이다. 그래, 사실 나는 이미 이 정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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