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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6. 2023

우아하게 선 넘지 말라고 하는 법

자자 우선 화는 내지 말고

이제 새로운 팀에 온 지가 한 달 정도 되었다. 지난주에는 무척이나 바빠서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처음 하는 일이라서 헤매기도 엄청 헤맸다. 일을 하고 나서 부서장의 피드백을 받아야 했는데 부서장이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어서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 힘들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마시고요. “


“저한테 묻지 마시고 스스로 생각을 하세요.”


“그냥 네~네~하고 답하지 마시고요.”


“왜 아까 말한 피드백과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온 거죠?”


“자기 생각에 빠져서 만들면 안 되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 친절하지 않다 보니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다. 하필 일을 할 때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아서 부서장이 내게 맡긴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을 일도 더 많아졌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고달팠다.


한 일주일을 고생하다 보니 약간 요령이 생겼다. 부서장 성격이 급해서 자료를 빨리 달라고 재촉을 했는데 그때마다 완성도를 높여서 가져가면 다시 수정을 하기 일쑤였다. A급을 가져가면 다시 수정해 오라고 하고, 다시 A급을 만들자니 시간도 시간대로 들고 노력은 노력대로 했다. 그래서 우선 힘을 빼고 부서장의 요구 조건만 맞춘 B급 자료를 먼저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자료를 달라고 하면 바로 B급 자료를 내밀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다음에 내 생각과 노력을 덧붙여서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 꼼꼼하게 다듬고 난 뒤 추가 점검 시간이 생기면 그때 내가 만든 A급 자료를 짜잔 하고 보여주었다. 부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중간점검 날이 되었다. 내 부분은 요령껏 넘어갔는데 다른 팀원이 만든 장표에 피드백이 많았다. 나름 중요한 장표였고, 팀원도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었는데 긴 시간 합을 맞춰온 것이 아니다 보니 자료의 톤 앤 매너가 기존의 것과 좀 달라 보였다.


“왜 이렇게 만든 거죠?”


“이런 부분은 나중에 한꺼번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처음 만들 때부터 꼼꼼히 만들어놔야 나중에 빨리 고치죠.”


“아~네…”


면박을 주는 말투였다. 나 같았으면 마음에 또 하나의 생채기가 났을 법했다. 그러고 나서 부서장이 자기가 만든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자료를 다 보여준 뒤 자기 자료에 고칠 게 없냐고 이야기를 했다. 난 이 부분과 저 부분의 폰트 사이즈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부서장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건 나중에 내가 다 고칩니다.”


“네에~그런데 아까 작은 것부터 꼼꼼하게 해 놔야 나중에 빨리 고친다고 말씀해 주셔서 저도 사소한 것이지만 말씀드린 겁니다.”


“…”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머리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말 한 방법은 예전에 읽었던 상사 대처법에서 나왔던 기법이었다. 상사가 기분 나쁜 말투를 쓰거나 욕을 할 경우 그 말을 똑같이 반복해서 들려주라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왜 이렇게 XX같이 일을 하냐.”라고 말을 했다면, “일이 조금 부족했을지는 모르겠지만  ‘XX’같이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을 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이 한 나쁜 말투나 말을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기법이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부서장이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다른 동료들 속도 시원해진 것 같았다.


‘오~ 나 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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