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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y 02. 2023

알게 모르게 깬 퀘스트처럼

뜻밖의 깨달음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후배에게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고, 요즘 느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의젓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잘 말하곤 하던 후배는 그 모습 그대로 성장해 있었다.


“잘 지냈어?”


후배에게 근황을 물었다. 후배는 몇 개월 전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 쉬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다가 다음 주부터 새로운 곳에 출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후배에겐 이번이 처음 퇴사가 아니었는데, 지난번 퇴사 때도 이런 식으로 먼저 퇴사를 하고 새 직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이번에도 직장을 구하는 데 성공하면서 퇴직 후 공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후배가 대단하기도 하고, 또 그런 일을 겪어냈다는 게 참 많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언니는요?”


후배의 말에 내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키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많은 부모님들이 그랬듯 나도 ‘낳아만 봐. 내가 다 키워줄게.’라는 말을 듣고는 아이가 태어난 후의 육아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 그땐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키우다 보니 부모님이 돌봐주실 상황이나 체력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과 내가 둘이 열심히 몸으로 때우면서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육아휴직으로 아이를 조금 키운 후에는 남편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남편과 함께 등하원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근무지가 다른 팀에서 제안을 받아 부서를 옮길 기회가 생겼다. 남편은 아이 어린이집이 불확실해진다는 문제로 망설였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이 핑계 대지 말자. 아이 때문에 뭔가를 못하게 되면 아이를 원망하게 될 거야. 우리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자.”


남편이 근무지가 다른 팀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내 마음은 바빠졌다. 남편의 바뀐 근무지에도 사내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한참 대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내 회사 근처의 어린이집을 모두 돌아다녔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이 난다. 남편에게는 호언장담했지만, 만약 여기서 어린이집이 구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두 군데 어린이집에 자리가 비어 있었고, 상담을 통해 좀 더 안정된 원장님이 계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어린이집보다 보육시간이 짧다고 알려진 유치원은 보내기가 어렵지 싶었는데, 1년 후인 지금은 집 근처 병설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데 후배와 내가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무척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도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일자리를 찾는 일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고, 나 또한 타인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남들이 말하는 어려움’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부딪혀서 깨뜨렸다는 점에서 많은 성장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열심히 깬 게임 캐릭터처럼 말이다.


문득 내가 후배를 대단하다고 느꼈던 그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칭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좀 멋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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