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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0. 2023

들기름 막국수와 과자 하나로 행복해지기

아이 엄마가 행복해지는 방법

“애 있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는 참 쉬워요.”


“그래요? 어떻게요?”


“애가 잠깐 없으면 돼요.”


“호호 정말이네요.”


몇 년 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땐 웃고 말았는데 요즘은 정말 그렇다 싶다. 워킹맘으로서 매일 종종거리며 살아가지만 아주 잠깐 숨통이 트일 때가 있다. 바로 지난 주말 같은 때다.


지난주 아이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감기가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열이 올라서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는데, 집에서 쉬어서 그런지 아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랬더니 역시나. 아이 열이 다시 올랐다.


“안 되겠어요. 어머님 도움을 좀 받자. “


마침 재택 중이었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피신을 가기로 했다. 재택이긴 하지만 근무는 근무인 터라 남편이 아이를 온전히 케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목요일 밤에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금요일 저녁 기차표가 모두 매진인지라 나는 토요일 아침 일찍 시댁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목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이 생겼다.


‘예에!! 자유부인이다!! “


워킹맘에게 자유시간이란 황금과도 같다. 이런 귀한 시간을 그냥 텔레비전만 보면서 축내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 할 일 리스트를 만들었다.


- 저녁 맛있게 해서 먹기

- 빨래하기

- 12시 전에 잠들기


이런 소소한 일들이었다. 금요일 퇴근 후 기쁜 마음으로 나는 마트에 들렀다. 이것저것 오직 나만을 위한 먹을거리들을 구입했다. 야채 조금, 과자 조금, 그리고 마실거리도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지난번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호기롭게 구매해 둔 유명 식당과 콜래버레이션을 한 들기름 막국수 밀키트를 꺼냈다. 그리고 닭가슴살과 미니 양배추 그리고 토마토를 잘 손질해서 평소라면 아이 때문에 못 넣었을 매운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야채볶음을 만들었다. 밀키트로 만든 들기름 막국수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식초를 조금 넣은 물도 한 잔 준비했다.


“잘 먹겠습니다!”


행복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들이었다.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렸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밀린 빨래도 돌렸다. 그리고 사 온 과자와 음료를 아삭아삭 맛있게 먹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서 나를 잘 챙기며 저녁을 보내고 있자니 왠지 내가 골드미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구나. 이런 저녁.‘


매일이 적막하다면 불행할 수 있겠지만, 가뭄에 단 비같이 이렇게 주어진 휴가는 참 행복하다. 물론 다음날 아이와 남편을 만나서 곱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의 짧은 휴가는 끝이 났지만, 가끔씩 이런 일이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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